[단독]“외모 때문에 미성년자인줄 몰랐다해도… 청소년대상 성범죄는 고소없어도 처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6일 03시 00분


친고죄 폐지이전 고소취하 사건
대법, 공소기각 1, 2심 파기 환송

지난해 9월 1일 오후 11시 반, 술에 취해 골목길을 걸어가던 A 씨(30)는 멀리서 걸어오는 B 양(당시 17세)을 발견했다. A 씨는 B 양에게 달려들어 몸을 휘어잡고 가슴을 만졌다. 그는 B 양을 근처 주차장으로 끌고 가려 했지만 B 양의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오자 도주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홍창)는 A 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유상재)는 A 씨에게 아청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모든 형사범죄는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A 씨는 B 양이 청소년인지를 몰랐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키 170cm, 몸무게 55kg 정도로 긴 생머리를 하고 검은색 민소매 상의와 청반바지를 입고 있어 성인으로 오인할 만한 외모와 체형이었다”며 “사건 당시 왼쪽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를 정도로 취했던 A 씨가 어두운 골목에서 3∼4m 앞에 있는 B 양의 나이를 판단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A 씨에게 아청법 대신 형법상 강간미수죄를 적용하려 했다. 하지만 A 씨가 B 양 측과 합의했기 때문에 공소 자체를 기각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6월 19일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에 벌어진 사건인 만큼 강간미수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검사는 항소했지만 2심도 같은 논리로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 2심을 모두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환송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대법원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강간이나 강간미수를 저질렀다면 아동·청소년임을 인식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비친고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피해자가 청소년인지 몰랐다면 아청법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형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서로 합의하면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친고죄 폐지 이전이라도 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의 경우에는 비친고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첫 판례로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미성년자#강간미수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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