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 내년 봄 학기부터 새로운 형태의 ‘대학 졸업 시험’이 도입된다. 기업의 수요에 맞춰 졸업생들의 실무능력을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미 대학이 처음으로 채택하는 시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200여 개 미국 대학이 내년 봄 학기부터 대학 입시 때 보는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표준화된 대학 졸업 시험을 도입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문제 해결 능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다. 대학 학점을 불신해 온 기업들은 이 테스트에 관심을 보이며 채용 과정에 적극 활용할 움직임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이사회 의장도 이를 극찬했다.
WSJ에 따르면 명문 텍사스대와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꼽히는 플래글러대(플로리다 주) 등 200여 대학이 이런 형태의 졸업 시험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 신문은 “학점보다 이 시험이 졸업생들의 (시장)가치를 훨씬 잘 보여줄 중요한 테스트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학생 학습평가(CLA·Collegiate Learning Assessment)+’로 불리는 이 시험은 비영리 민간 교육기관인 교육지원위원회(CLE)가 2002년 개발했으며 지금까지는 미 일부 대학과 온라인 교육기관이 보조평가 수단으로만 활용해 왔다.
대학들이 이 같은 시험을 채택한 배경에는 기업들의 대학 교육에 대한 불신이 한몫을 했다. 200여 개 대학 150만여 명의 학점을 조사한 듀크대 조사에 따르면 1940년에 비해 2008년 A학점을 받은 비율이 무려 3배로 뛰어올랐다. 구글 P&G 등 상당수 기업들은 인플레가 심한 학점을 더이상 채용 과정에서 중요지표로 여기지 않고 있다. 이 시험을 직원 채용에 적극 활용할 계획인 대형 건설회사 HNTB 마이클 스위니 수석부사장은 “명문대를 나와 좋은 학점을 딴 졸업생들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옮기지 못하고 논쟁에도 취약하다. 우리는 좋은 학점과 입사지원서에 속아 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CLA+’는 의무는 아니지만 기업들이 채용에 널리 도입하면 대학이 SAT를 공식점수로 인정하는 것처럼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뉴욕 세인트존피셔칼리지의 졸업반 학생 코리 라듀크 씨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도 학생들이 학점을 잘 따는 방법이 있으니 기업들이 학점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번 시험은 나의 실력을 입증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0분 동안 온라인을 통해 치러지는 시험은 실제 상황을 문제로 부여한다. 일례로 ‘만약 수험자가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관에 있다면 입후보자의 공약을 받아들이겠느냐’는 등의 주제가 주어진다.
일부 대학과 석박사 과정은 졸업을 위해 전공 관련 시험을 치르지만 CLA+는 성격이 다르다. 전공에 관계없이 동일한 문제가 제시된다. 대학 졸업생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한 시험이다.
명문 하버드대를 중퇴한 게이츠 의장은 지난해 말 자신의 블로그에 “대학 교육과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 간에는 괴리가 너무 크다”며 “그런 측면에서 CLA+ 테스트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장문의 글을 올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2일 대학 등록금과 관련한 정책미팅에서 “연방정부가 대학 능력 평가 방식을 바꾸는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플시험을 주관하는 비영리 교육기관인 ETS도 6월 정보기술을 검색하고 제대로 조합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묻는 ‘아이스킬스(iSkills)’를 개발했다. SAT와 함께 양대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인 ACT를 주관하는 동명의 교육기관도 ‘ACT 워크키스(WorkKeys)’를 개발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