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암 발병률 최대 6.5배 높여”
손해배상 청구땐 공공기관 첫 사례, 흡연 피해로 건보료 年 1조6914억 지출
소송가액 兆단위 예상…과실입증 관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 진료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검토하기로 했다. 건보공단이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면 국내 공공기관으로서는 최초의 ‘담배 소송’ 사례가 된다. 소송가액도 조 단위로 예상된다.
건보공단은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과 공동으로 27일 서울 마포구 건보공단 대강당에서 개최한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흡연의 건강영향 분석 및 의료비 부담’ 세미나의 발표 자료가 담배의 건강 피해를 입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연구팀은 1992∼1995년 일반검진을 받은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피부양자(30세 이상) 약 130만 명의 질병정보를 2011년 말까지 최대 19년 동안 추적 분석했다. 건강검진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연구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흡연 남성의 후두암 위험은 일반인의 6.5배, 폐암은 4.6배, 식도암은 3.6배였다. 방광암(1.9배), 뇌중풍(1.8배), 췌장암(1.7배) 발병률도 높았다. 여성 흡연자도 후두암 위험은 5.5배, 췌장암은 3.6배, 결장암은 2.9배였다. 방광암(2.1배), 폐암(2.0배), 자궁암(1.7배), 뇌중풍(1.7배)에 걸릴 위험도 증가했다.
건보공단은 흡연에 따른 2011년 기준 건보 진료비 지출이 1조6914억 원으로 전체 건보 진료비(46조 원)의 3.7%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뇌혈관 질환(3528억 원), 허혈성 심질환(2365억 원), 당뇨병(2108억 원), 폐암(1824억 원), 고혈압(1657억 원) 순으로 많았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흡연은 20∼30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 1980∼1990년 흡연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이 영향이 2020년 정도까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은 세미나가 끝난 뒤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소송을 포함한 모든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건보공단은 소송의 근거를 국민건강보험법의 구상권 청구 규정에 두고 있다. 이 법 제58조는 제3자의 행위 때문에 건보 진료비가 쓰였다면 공단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허용한다.
진료비를 기준으로 하면 건보공단의 최종 청구금액은 1조 원을 넘을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 주정부의 담배 소송 사례를 볼 때도 소송가액은 천문학적 규모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1994∼97년에 50개 주 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양측이 법정 공방 끝에 합의하면서 담배회사가 25년간 주 정부에 2060억 달러(약 229조 원)를 물어주게 됐다. 캐나다에서는 5월에 온타리오 주가 담배회사에 500억 달러(약 56조 원)를 청구한 소송에서 이겼다.
다만 건보공단이 소송에 착수했을 때 담배회사의 과실과 책임을 입증하는 일이 어렵다. 법적 공방이 끝없이 이어질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이유다. KT&G 측도 “담배회사가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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