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평가 끝나니 머리에 더 쥐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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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수능’ 최대 피해자 現 고3… 수시 원서마감 코앞인데 영어 A-B형 선택 눈치싸움

《 서울 용산구의 A고교. 전국적으로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끝난 하루 뒤인 4일, 이 학교 3학년 교실은 시끌시끌했다. 몇몇 학생이 모여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눴다. 쉬는 시간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상담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예년엔 9월 모의평가가 끝나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였다고 이 학교 교사는 설명했다. 올해 고교 3학년 교실을 어수선하게 만든 주범으로는 선택형 수능이 지목된다. 영어를 A, B형으로 나눠 치르는 전무후무한 방식에 고3 학생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    
    
○ 지금 고3은 버려진 세대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국어 영어 수학 시험을 치르는 선택형 수능은 올해 처음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어떤 유형을 고르느냐에 따라 당락이 좌우될 수 있어 ‘로또 수능’이란 지적이 잇따르면서 내년부터 당장 영어의 A, B형이 사라진다.

문제는 수능을 코앞에 둔 현재 고3 학생들이다. 진작부터 이들 사이에선 ‘저주받은 고3’이란 말이 돌았다. 일단 선택형 수능이란 개념 자체가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대학들이 입시요강을 늦게 발표하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고교 3학년인 김민석 군은 “어느 대학이 어떤 유형을 택하는지, 또 B형에 얼마나 가산점을 주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3학년이 된 올해 초 일단 유형부터 골라잡았다”고 털어놨다.

선택형 수능 혼란은 6월 모의평가 결과가 발표된 이후 더 커졌다. 국어와 수학은 대체로 인문계냐, 자연계냐에 따라 A, B형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 반면에 영어는 수험생의 전략에 따라 선택이 갈린다. 가산점을 바라고 B형을 택할 것인가, 쉬운 A형을 택해 고득점을 노릴 것인가.

6월 모의평가 결과 영어 A형의 표준점수 최고점이 B형보다 11점이나 높게 나타났다. A, B형의 난도 차가 다른 과목보다 훨씬 컸다는 뜻이다. 9월 모의평가 역시 영어의 난도 차가 6월 못지않게 컸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수험생들의 선택은 더 힘들어졌다. 중위권 이하 수험생이 A형으로 더 몰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막판까지 눈치 싸움이 치열해질 판이다.

서울 금천고 3학년인 정모 군은 “3일 모의평가 전까진 어떻게든 B형을 보고 가산점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오히려 A형을 보는 게 안정적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군은 “사실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막판 스퍼트를 해야 할 시점에 유형 선택도 못해 오락가락하는 상황 자체가 불안하다. 친구들끼리 서로 ‘버려진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라며 씁쓸해했다.

서울 상일여고에선 3학년 학생들에게 특별 면담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당장 원서접수 마감일이 6일인데 아직까지 유형을 선택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서다. 이 학교 전경렬 교감은 “우리 학교는 예능계열에 특화돼 그쪽 지원자가 많다. 그런데 학교마다 요구하는 유형이 달라 고민하는 학생이 상당수다. 특히 3∼5등급에 걸친 학생들은 정말 애가 탄다”고 전했다.

서울 휘문고 신종찬 교사는 “마지막 공식 평가인 9월 모의평가는 보통 말 그대로 수능 직전 모의시험 성격에 그쳤다”면서 “하지만 올해는 이 시험 성적이 유형 선택을 좌우하는 가늠자 역할까지 하면서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학부모 상담도 이어져

노심초사하긴 학부모도 마찬가지.

9월 모의평가 결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학부모가 많다. 고3 아들을 둔 이영미 씨(45)는 “상대적으로 지원 대학 선택의 폭이 넓은 영어 B형만 생각했는데 이번 모의평가 결과 때문에 흔들린다. 6월에 이어 9월까지 이렇게 출제됐다면 A형 지원자들 안에서 점수를 잘 받아 비교우위를 누리는 카드를 뽑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일단 원서접수 마감일까지 아들 대신 정보를 수집하면서 눈치작전을 펼칠 생각이라고 했다. 당장 주요 대학들의 수시 원서접수 마감일도 코앞에 닥쳐 왔고 수험생인 아들이 신경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고3 딸을 둔 양모 씨(43)는 학교 안에서 딸과 비슷한 성적대인 몇몇 수험생의 학부모와 모임을 열기로 했다. 영어 유형 선택 문제를 포함해 수시 지원 전략 등을 상의하기 위해서다.

입시 업체들에도 학생 및 학부모들의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모의평가 결과는 27일에 발표된다. 수험생들은 수능 원서접수 마감일 전에 이번 시험을 토대로 객관적인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결국 사교육 기관들이 발표하는 수능 등급별 커트라인 등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 되면서 상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선택형 수능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이번 모의평가를 기점으로 크게 확산되는 분위기”라며 “가장 투명하고 정직해야 할 대학입시가 운에 좌우되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고3#수능#선택형 수능#표준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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