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시 대부도 포도농가를 찾은 서울대 인액터스팀 이현규 씨가 농민 유길주 씨와 대화하고 있다(왼쪽). 카카오톡 ‘선물하기’코너에 입점한 대부도 포도 상품(아래). 서울대 인액터스 팀은 영세 농가 회생 프로젝트를 진행한 끝에 지난달 19일 카카오와 ‘선물하기’ 코너 입점 계약을 했다(오른쪽). 서울대 인액터스 제공
포도는 매년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렸다. 하지만 김대기 씨(32)는 포도밭 아래서 줄담배만 피웠다. 김 씨는 아버지 때부터 시작해 경기 안산시 대부도에서 50년째 가업인 포도 농사를 이어왔다. 당도가 높고 알이 굵어 예부터 특산물로 유명한 대부도 포도였지만 농산물 브랜드화와 직거래 방식을 따라가지 못해 농가들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런 대부도 농민의 손을 잡아준 것은 서울에서 온 5명의 20대 청년들이었다.
대학생 사회적 기업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Entrepreneurial Action Us·기업가 정신의 실천을 통한 사회공헌을 목표로 하는 대학생들이 모인 국제 비영리단체)’ 서울대팀 소속인 이들은 2011년 6월 처음 대부도를 찾았다. 팀은 자신들이 가진 경영학 지식과 아이디어로 회생시킬 수 있는 영세 농가를 수소문하던 중 대부도의 청년 농민이던 김 씨를 만났다.
이들이 대부도를 처음 찾았을 때 대부분 50, 60대인 농민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이전에도 대부도 포도를 살리자는 사업가들이 수차례 찾아왔고 안산시에서 야심 찬 포도사업단 사업도 진행했지만 결국 모두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인액터스 회원들은 달랐다.
“기온이 38도에 육박하는 여름날 60대 어르신이 하루 종일 딴 포도가 트럭에 실리는 걸 보면서 ‘이번엔 제값 받아야 할 텐데…’라고 중얼거리시는 걸 들었어요. 이분들에게 정당한 값이 돌아가도록 돕겠다고 결심했죠.” 인액터스 회원 배정환 씨(25·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3학년)의 말이다.
2년간 이들은 1, 2주에 한 번씩 대부도를 찾았다. 포도 공장 긴 식탁에서 각 농가 가장들이 머리를 맞댄 회의가 열렸다. 나중엔 함께 농사를 짓는 어머니들과 인부들까지 20여 명이 식탁에 모여 앉았다. 팀은 침체 분위기였던 농가를 모아 법인을 만들고 ‘포도마중’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출시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대 학생들의 힘을 빌려 계란판처럼 포도알을 감싸줄 수 있는 택배 전용 플라스틱 받침도 개발했다.
이들은 최근 포도를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판로를 열었다. 팀은 지난달 19일 대부도 포도농가의 포도를 카톡 ‘기프티콘’ 기능에 상품으로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젊은 층에서 커피나 생일 케이크 등을 현물로 교환 가능한 모바일 쿠폰인 기프티콘으로 주고받는 점에 착안해 청년 세대와 지역 농가를 연결한 것이다. 김 씨는 “카톡을 통하면 5kg 포도 한 상자에 유통 마진을 3000∼4000원 절약할 수 있다”며 “호응도 뒤따라 본격적으로 출고한 것이 열흘 정도밖에 안 됐는데 벌써 매출액 150만 원을 넘었다”고 말했다.
대부도 농가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서울대팀이 ‘길주 아저씨’라 부르는 농민 유길주 씨(63)는 학생들이 마련한 농가경영 전문가들과의 교육 자리에서 열띤 토론을 이끌었다. 인액터스 회원 배 씨는 “처음엔 ‘그건 안돼’라는 식으로만 말씀하셨던 분들이 이제는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신다”며 “수십 년 이어온 영세 농가를 지켜보며 사실 이 분들이 ‘숨은 프로’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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