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불이 들어오니 가게도 더 널찍하고 깨끗하게 보이네요. 손님이 절로 늘 것 같아요.”
10일 오후 강원 영월군 영월읍 중심가에 있는 영월서부시장. 시장 내 한 과일가게에서 어두침침하던 형광등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LED등은 전기효율이 5배에 달해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다. 전기료도 훨씬 싸다. 불이 들어오자 진열대의 과일도 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더욱 맛깔스럽게 보였다.
○ 에너지기업 노하우 살려 전통시장 지원
이날 이상호 사장 등 한국남부발전 임직원 70여 명은 자매결연시장인 영월서부시장을 찾아 화장실 등 공용시설과 가로등을 고효율 LED 전등으로 교체했다. 전기시설 누전여부를 확인하고 노후 전기설비도 개선했다. 남부발전은 협력업체인 한전KPS의 도움을 받아 올해 1500만 원 상당의 영월서부시장 에너지 인프라 개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 각 가게의 노후 전기설비를 교체하는 등 시장 전체 환경개선 사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기 작업을 마친 이후에는 남부발전 직원들이 삼삼오오 시장을 돌며 추석제수용품을 구매했다. 부서별로 시장 내 식당에서 회식도 가졌다. 또 ‘에너지 복지 바우처’ 사업의 일환으로 영월읍내 조손가정 등 소외계층을 찾아 도배장판교체, 전기설비 개량 등을 지원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 2100만 원을 들여 연내 15가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날 안전모를 쓰고 직접 전등교체 작업에 참여한 이 사장은 “에너지 전문회사로서의 역량을 살려 전통시장과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이 같은 사업을 시작했다”며 “영월에는 2010년 준공한 영월천연가스발전소가 있는데, 발전소가 있어 영월이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남부발전은 영월을 비롯해 부산, 울산, 경남 하동, 강원 삼척 등 8개 사업소 관내의 전통시장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5000만 원 규모의 에너지 인프라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온누리상품권을 6억5000여만 원어치 구매하고, 소외계층 물품지원 및 식당 부자재 구입 용도로 지난해부터 전통시장에서 4000만 원어치 장을 보는 등 전통시장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 관광객 입소문 타고 ‘전국구 시장’으로
영월서부시장은 몇 년 전부터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시장이다. 최근 지상파 TV의 한 예능프로에 소개되는 등 여러 차례 매스컴도 탔다. 청과물과 식료품, 농축, 수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공설시장과 향토 음식 장터인 아침시장, 생필품과 의류 잡화 등을 위주로 판매하는 종합시장 등 3개의 시장이 특색을 살려 한 데 어우러져 있다.
지금은 빈 가게가 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시장이지만 한때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영월군 내 인구는 4만 명에 불과해 수요가 한정돼 있는데 이마저도 대형마트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2001년 영월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영월 지역경제도 어려움을 겪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사람들을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먼저 2003∼2005년 45억 원을 들여 현대적 아케이드 시설과 냉난방 시설, 간판교체 등 리모델링공사를 실시했다. 사람들이 지나가기에 비좁고 지저분하던 길을 넓히고 노점을 치우는 등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갖췄다. 상인들을 대상으로 친절교육을 강화하고, 영월군을 통해 정기적으로 전문가로부터 시장관리, 홍보 등 컨설팅도 받았다.
사람을 끌어오는 것은 영월군의 역할. 군은 단종문화제(4월) 동강축제(7월 말∼8월 초) 등 축제를 개최하고, 20여 개 관광특구를 통해 관광객을 모았다. 영월역과 영월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깝다는 이점을 살려 서부시장을 영월관광의 필수코스로 넣었다. 이에 따라 5년 전부터는 중국, 필리핀 등 외국인 관광객까지 점차 늘어나고 있다. 10일 시장을 찾은 박선규 영월군수는 “영월을 알리기 위해 노력이 성과를 얻어 연간 500만 명이 영월을 찾고 있다”며 “서부시장도 덩달아 영월의 명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 번 찾은 관광객의 발길을 다시 붙잡은 것은 상인들의 몫. 휴가철 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소박하지만 풍성한 향토 먹을거리를 선보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메밀전병, 부침개, 닭강정 등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다. 상인들이 친절하고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포도 사과 등 농산품도 함께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권 서부시장 상인회장은 “상인 교육차 일본 전통시장을 둘러보면서 친절, 겸손, 질서에 감명을 받았다”며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친절교육도 강화해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메밀전병… 부침개… 쫀득 담백 전통음식의 천국 ▼
영월 서부시장은 아침시장 내에 자리 잡고 있는 푸짐한 향토 음식이 매력적이다. 특히 강원도 지역특산물 메밀로 만든 메밀전병과 부치기(부침개)가 별미로 꼽힌다.
약 30년 전부터 시장 내에 메밀전병 점포가 하나둘씩 들어서 지금은 약 30개에 이른다. 서부시장의 메밀전병은 볶은 김치와 당면이 적절하게 들어가 씹는 맛과 칼칼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부치기는 얇은 전 위에 배추와 부추 그리고 김치를 한 조각씩 소박하게 올린 것이다.
13년 전부터 전병을 만들어온 태복분식 정순이 사장(62·여) 은 “다른 지역과 달리 전병의 피가 쫀득하고 맛이 담백하다”며 “한 번 드시고 맛을 잊지 못해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주문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가격은 전병 1개와 부치기 1장이 각각 1000원.
전병 소로 볶은 김치 대신 각종 곤드레나물, 명이나물 등을 넣는 시도도 하고 있다. 동강맛집 최은주 사장(40·여)은 “2년 전부터 전병 소에 곤드레나물을 넣었고, 전병 피도 나물을 갈아 넣고 녹차가루를 첨가해 초록빛이 나게 했다”며 “새로운 맛을 계속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국수(올챙이 묵)는 올챙이를 쏙 닮아 보는 재미까지 더한다. 옥수수로 죽을 쑤어 작은 구멍이 난 통에 담아 밀어내면 나오는 모양이 꼭 올챙이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찬물에 올챙이처럼 생긴 면이 담기고 면 위에 김치가 먹을 만큼 올려져 나온다. 수저가 닿기만 해도 국수 면이 끊어지기 때문에 젓가락으로는 먹을 수 없고 숟가락으로 김치와 버무려 먹어야 한다. 쉽게 배가 부르고 뒤돌아서면 금방 소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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