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A 씨는 해외 지사로 발령받아 가족과 함께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다 A 씨에게 아파트를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려간 B 씨가 담보 잡힌 집을 처분해 재산을 빼돌리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A 씨는 B 씨가 아파트를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 B 씨의 아파트에 대해 가압류 신청을 하기로 했다.
A 씨는 이를 위해 법원을 찾았지만 신청에 필요한 등기부등본과 등록면허세 등 관련 세금을 관할 구청에 낸 각종 증명서를 갖고 오지 않아 헛걸음을 했다. A 씨는 다음 날 구청과 보증보험회사 영업점 2, 3곳을 들러 관련 서류를 준비한 뒤 다시 법원을 방문해 서류를 제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판부가 관련 서류가 더 필요하다는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A 씨는 서류 제출을 마치지 못한 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출국해야 했다.
앞으로는 A 씨처럼 소송 절차 때문에 법원을 여러 번 오가거나 해외에 있을 때 불편을 겪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은 2010년 4월 특허사건에 대한 전자소송 서비스를 처음으로 시작한 데 이어 16일 0시부터는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가압류와 가처분 등 신청 사건에까지 전자소송 서비스를 확대 시행한다고 15일 밝혔다. 사실상 형사재판과 파산재판을 제외한 모든 재판이 전자소송으로 시행되는 셈이다.
기존 ‘종이 소송’은 첨부 자료나 비용 납부 영수증을 반드시 원본으로 법원에 제출해야 해 번거로웠다. 전자소송을 이용하면 관련 자료를 일일이 따로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 등기소와 전자소송 시스템을 연계해 각종 자료의 발급 전용번호만 입력하면 신청서에 자동으로 추가되기 때문이다. 등록세와 면허세 영수증도 소송 시스템에 납부번호만 입력하면 법원에 별도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고 인지대도 10% 깎아준다.
이미 민사소송은 재판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전자문서화해 시스템상에서 열람할 수 있게 돼 있다. 변론에 제출할 서류도 인터넷으로 업로드만 하면 돼 서류 송달 등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소송 당사자 또한 실시간으로 재판기록을 언제 어디서든 열람할 수 있는 구조다.
이처럼 제출 서류가 줄어들고 절차가 간단하다는 이점 때문에 전자소송 신청 사건 수는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민사소송의 경우 지난해 기준 1심 접수 건수가 약 100만 건이었는데 이 중 45%가 전자소송으로 진행됐다. 대법원 측은 가압류와 가처분 등 신청 사건이 지난해 약 80만 건에 이른 점을 볼 때 내년에는 ‘전자소송 100만 건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민사 본안사건의 경우 지금은 사건 당사자 모두가 소송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가압류나 가처분 사건에 대해서는 집행이 완료될 때까지 채무자가 진행사항을 열람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낼 때 필요한 담보제공 명령 등에 대해서도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시간을 다투는 가압류·가처분 사건을 좀 더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전자소송이 확대되면서 소송 1건당 100쪽 이상의 서류가 전자문서화됐다. 이로 인해 수천만 쪽에 이르는 서류의 생산·보관·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매년 소나무 273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대법원에 따르면 민사 전자소송 시행 이후 2011년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약 1808억 원의 비용이 절감된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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