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방문요? 이미 충남 금산에 계신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매년 돌아오는 명절 한 번 거르는 것도 서운한데 60여 년을 기다려온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요.”
16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만난 허정구 남북교류팀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한 뒤 평소 50일 이상 걸리던 상봉 준비를 한 달여 만에 진행하느라 주말도 반납한 채 강행군을 계속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은 이날 이산가족 상봉의 최종 명단을 교환했다. 적십자사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과 통화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직원들이 북측에서 의뢰한 재남(在南) 가족 중 상봉 참석 인원을 확정하는 절차를 밟는 동안 각종 문의 전화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허 팀장은 “추석 당일만이라도 팀원들을 쉬게 해주고 싶지만 5명 정도의 직원이 일일이 전화를 돌려 절차를 안내하고 참석자를 확인하려면 빠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3년 만에 재개된 상봉 행사는 적십자사 직원들에게 이산가족 못지않게 반가운 일이다. 이산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남북교류팀은 적십자 내에서 인기가 높은 부서다. 허 팀장은 “적십자사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인도주의적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산가족을 돕는 일은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 만큼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에 처음 상봉 준비에 참여한 송제원 담당은 명단 교환을 위해 직접 판문점을 다녀오기도 했다. 송 담당은 상봉 대상자 중 김세린 할아버지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나타냈다.
“전화로 상담을 드렸는데 우편접수는 못 믿겠다고 본사까지 직접 오셨죠. 할아버지께서 ‘부모님은 돌아가셨겠지만 친척들 만나서 묘소에 대신 안부라도 전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북측에서 보내온 명단을 받아들자마자 김 할아버지 이름을 찾아보고 아이처럼 기뻐했어요.”
이산가족을 직접 응대하는 고충도 적지 않다. 직원들은 최종 상봉 명단에서 탈락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할 때면 미안함을 넘어 죄책감마저 든다고 했다. 송 담당은 “탈락한 어르신이 화부터 내시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니 처음에는 화가 났다. 하지만 애원하다가 체념하고 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삼킨 적이 많다”고 말했다.
이 팀의 오상은 담당은 지난달 말 본사 민원실을 찾은 조장금 할머니가 1차 상봉 명단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오열할 때 할머니 곁을 끝까지 지켰다. 오 담당은 “어르신들의 애끊는 한탄을 끝까지 들어드리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남북교류팀은 이산가족들이 슬픔을 하소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2004년부터 이산가족 행사 준비를 맡아온 허 팀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인원이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고 털어놨다.
“매년 찾아오시던 어르신이 문득 안 보이실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죠. ‘설마’하는 마음에 알아보면 역시나 세상을 떠나신 경우가 많거든요. 심지어 북쪽에서 찾는다는 연락이 왔는데 불과 몇 달 전에 돌아가신 경우도 있었죠. 당장 남북통일은 어렵더라도 상봉 행사만이라도 정례화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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