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지정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 시범학교인 영신여고(음악)와 신현고(체육)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했다.
일반고 재학생도 예체능과 과학, 제2외국어 등 예술고와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에서 배우는 수준의 심화과정을 이수하며 자신의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도입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일반고 교육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일반고 점프 업(Jump up) 추진 계획’ 중 하나인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이하 거점학교)의 시범운영을 최근 시작했다.
거점학교는 음악, 미술, 체육, 과학, 제2외국어 그리고 직업교육을 할 지역별 거점학교를 선정한 뒤, 참여를 희망하는 인근 지역 일반고 2, 3학년 학생들이 소속 학교가 아닌 거점 학교에서 심화 정규수업을 듣는 프로그램. 학생들은 운영방식에 따라 주 2일에서 최대 4일까지 소속 학교와 거점학교를 오가며 수업을 듣는다. 기존에도 일반고에 음악, 미술, 체육, 과학 등의 심화수업을 하는 ‘교육과정 중점학교’가 있었지만 해당 학교의 선발과정을 통과한 학생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반면 거점학교는 희망하는 고교생이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으며 면접 등 간단한 절차만 통과하면 대부분 자신의 진로에 맞는 심화수업을 들을 수 있다.
고교 진학 후 뒤늦게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했지만 기존 일반고 교육과정 안에서는 끼를 계발하기 어려웠던 학생, 예술고나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 못해 일반고로 입학한 학생,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교육 비용부담 등의 이유로 배우기 어려웠던 학생 등에게는 새로운 교육기회가 열린 것이다. 거점학교의 특징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까. 서울시교육청의 거점학교 시범학교인 서울 영신여고(음악)와 서울 신현고(체육)를 최근 찾았다.
대학교수급 강사가 일대일 지도
“자연계열 학생이지만 평소 음악과 작곡에 관심이 많아 영신여고에서 진행되는 음악 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사실 이전까지는 학교 내신 성적이 2.3등급으로 상위권이라 막연히 대학 자연계열 학과로 진학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음악 심화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음악 관련 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좋을지를 두고 진로를 더 고민해볼 생각이에요.”(서울 창동고 2학년 노승윤 군)
음악 거점학교인 서울 영신여고에는 노 군을 비롯해 음악분야에 관심 있는 영신여고와 자운고, 창동고 등 인근 지역 일반고 학생 39명이 모여 음악 심화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매주 수, 금요일 이틀간 오전 8시 10분부터 오후 5시 50분까지 진행된다. 학생들은 희망에 따라 △성악 △지휘 △작곡 △피아노 △클래식기타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 총 7개 세부 과목 중 전공과목을 선택한 뒤 각자 시간표에 맞춰 음악에 푹 빠져 지낸다. 수업은 전공 실기과목 일대일 지도를 중심으로 음악이론, 시창(모르는 곡을 악보만 보고 처음 불러보는 것), 청음(귀 훈련을 위해 음악을 듣고 리듬 박자 등을 악보에 옮겨 적는 것) 등 공통수업이 진행된다.
작곡 전공을 선택한 영신여고 2학년 조라영 양(17)은 “중학교 때부터 음악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배울 곳이 없어서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혼자 공부했다”면서 “학교 정규수업시간에 깊이 있는 음악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눈길을 끈 부분은 음악대학과 음악전문 교육기관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9명의 강사진. ‘별도의 등록금이나 수업료 없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 교양수준의 교육을 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학부모와 교사의 짐작과 달리 외부에서 초빙한 음악분야 석·박사급 강사들이 수업을 진행한다.
대부분 서울대 연세대 등 유명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 고등 음악원 등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재 대학에서 외래교수로 음악전공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급 강사들이다.
성악을 가르치는 손지현 강사(31)는 “이론수업을 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학생들을 일대일로 지도한다”면서 “예술고 학생들도 이 정도 수준으로 일대일 지도를 받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교육비 줄었어요”
서울 신현고는 체육 교육과정 거점학교. 3학년 학생 20명이 체육 심화수업을 듣는다. 신현고 학생 12명과 동대부고, 면목고 등 인근 일반고 학생 8명이 체육 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학생들은 화, 목요일 7교시까지 △체육과 진로탐구 △스포츠 개론 △스포츠 경기 기술 수업 등을 들으며 기초체력 향상 프로그램과 전공실기 연습 등을 한다. 체력프로그램은 민첩성, 지구력, 유연성, 순발력, 근력 등으로 영역을 나눠 전문적으로 진행된다.
동대부고 3학년 유성진 군(18)은 “체육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꾸며 신현고에서 진행하는 체육 거점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면서 “체육에 관심이 많은데 거점학교를 다니니 정규수업시간을 통해 체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어서 신이 난다”고 말했다.
신현고는 운동장, 체육관, 무용실, 탁구장, 배드민턴장, 헬스장, 권투연습실 등 다양한 체육시설을 갖췄다. 앞으로 거점학교 지원예산 중 시설기자재구입비로 받은 1억8000만 원을 투자해 체육시설을 단계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신현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윤영준 강사(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졸)는 “입시체육 학원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해 봤지만 체육관과 기자재 등 시설 면에서도 학교의 교육환경이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말했다.
거점학교에서 만난 학생 대부분은 기존에 다니던 예체능 학원 비용을 내지 않게 되면서 사교육비 지출이 상당히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신현고 2학년 김윤진 양(17)은 “체육교사가 꿈이라 지난 겨울방학 때 35만 원을 내고 주 3일, 3시간씩 진행하는 체육학원에 다녔지만 이젠 학원을 끊고 학교에서 준비한다”면서 “이틀 동안 교과목 수업을 듣지 못하는 부분은 정규수업을 마치고 국어, 영어, 수학 방과 후 수업을 들으며 보충한다”고 말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밝히는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 “거점학교 확대해서 일반고 학생의 ‘끼’ 살려줄 것”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는 서울지역 24개 일반고에서 이번 2학기에 시범운영을 한다. 내년 2월까지 운영한 뒤 내년 3월 새 학기부터 본격 운영된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사진)을 최근 만나 일반고 거점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궁금증을 풀어봤다.
Q. 일반고 교육과정 거점학교는 어떤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인가.
일반고에는 다양한 ‘끼’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다. 특히 예체능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관심이 없는 일반 교과목 수업 땐 상대적으로 흥미를 갖기가 쉽지 않다. 일반고 거점학교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진로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우며 ‘신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Q. 학생선발은 어떻게 하나.
현재는 각 거점학교에서 ‘거점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심층면접을 중심으로 선발한다. 앞으로 지원 학생이 늘어 경쟁률이 높아지면 기존 거점학교에 학급을 추가로 개설하거나 인근 지역의 다른 일반고를 거점학교로 추가 선정하는 방식으로 가능한 한 지원하는 모든 학생의 ‘끼’와 ‘꿈’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현재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거점학교 등 청소년들의 관심이 많은 다른 진로분야 거점학교 선정도 고려 중이다.
Q. 거점학교 수업 날엔 소속 학교에서 정규 교과수업을 받을 수 없다. 어떻게 보완하나.
한 학교에서 15명 내외 학생이 거점학교 수업을 들을 땐 소속 학교에서 별도로 1개 반을 편성해 수업을 진행한다. 한 학교에 1, 2명만 참여할 땐 소속 학교 교사들이 방과 후에 학생들을 개인 지도한다. 보충반 운영과 교사들의 수당 등에 사용될 별도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예체능 학생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교과수업 부담이 큰 과학, 제2외국어 분야 거점학교 수업은 토요일과 방학, 방과 후 시간대에 수업을 편성해 수업결손이 최대한 없도록 했다.
Q. 거점학교 학생의 생활지도는 어떻게 하나.
거점학교에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 외에 2명 내외의 담임교사가 배정된다. 조회와 종례를 소속 학교와 같게 진행한다. 학생상담 및 생활지도도 맡는다. 거점학교에 오는 순간 거점학교의 교칙에 따라 생활한다. 별도의 거점학교 생활지도 운영 규정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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