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 막나가는 오리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0일 03시 00분


■ 본보, 오피니언 리더 50명 ‘썼다 지운 트윗’ 1387개 분석

지난달 23일 소설가 이외수 씨의 트위터에 “국민 혈세로 천인공노할 만행을”이라는 내용이 올라왔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강경 우파 성향 사이트) 직원에게 지급되는 보수가 기본급 380만 원에 인센티브 450만 원”이라는 다른 트위터리안의 트윗을 인용해 리트윗(자신이 본 트윗을 타인에게 보라고 추천하는 것)하면서 자신의 코멘트를 덧붙인 것이다. 특정 사이트 운영에 세금이 투입됐다는 이 주장은 팔로어 167만781명에게 퍼져나갔다.

이 주장은 같은 달 6일 일베 직원으로 자칭한 누리꾼이 최초로 퍼뜨린 것이었다. 일베 운영진은 해당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 이 씨는 해당 트윗을 올린 지 14분 만에 지웠지만 팔로어들이 다시 리트윗해 퍼 나른 뒤였다.

이 씨의 트윗은 공식 계정에서는 지워졌지만 ‘폴리트웁스(Politwoops)’ 사이트에 남아있다. 폴리트웁스는 썼다 지운 트윗을 수집해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사이트로, 네덜란드의 비영리재단 ‘오픈스테이트’가 개발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7월 폴리트웁스 오피니언리더판 사이트(politwoops.com/p/korea2)를 개설해 팔로어 수가 많고 리트윗 빈도가 높은 국내 파워 트위터리안 50명을 분석 대상으로 등록했다. 등록 대상은 트위터 분석 사이트인 ‘코리안트위터’의 ‘영향력 순위’와 매체 노출 빈도를 바탕에 두고 언론학자와 정치학자에게 자문해 정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동아일보와 ‘오픈스테이트’가 공동 개설한 폴리트웁스 한국판 사이트(politwoops.com/g/korea)는 현역 국회의원과 광역자치단체장 등 정치인 291명만을 분석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팔로어를 수만 명에서 수백만 명 거느리고 정치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오피니언리더들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감시 대상을 늘렸다.

▶본보 2012년 11월 10일자 A1면 의원님이 지운 트윗,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본보 2012년 11월 10일자 A3면 “빅엿” “팔푼이” 올린 순간 확 퍼져…

본보가 7월 1일부터 이달 29일까지 파워 트위터리안 50명이 썼다가 지운 트윗 1387개를 분석해보니 막말과 유언비어 등 무책임한 트윗을 작성해 퍼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팔로어가 6만2000여 명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을 두고 “정치인 ○○○(야당 지도급 인사의 실명 언급)도 이혼했으니 종북들의 영웅이 될 최소한의 자격을 갖췄다”고 적었다가 2분 만에 지웠다. 변 대표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 대해서는 “생긴 것부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패죽이고 싶도록 싫다” 등 비속어 트윗도 여러 건 작성했다. 변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심한 단어를 골랐다가 곧 생각을 고치고 지웠다”고 해명했다.

팔로어가 36만여 명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RO(혁명조직) 회합의 내부 제보자로 알려진 A 씨의 실명을 트윗에서 그대로 거론해 신상 정보를 퍼뜨렸다가 25분 만에 지웠다.

팔로어가 11만5565명인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은 7월 한 인터넷매체에서 제기된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 정부를 의식해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거절했다”는 주장을 옮겼다가 하루 만에 지웠다. 당시 여성가족부는 “박 대통령에게 위안부 할머니 면담 관련 내용을 보고한 적조차 없다”며 황당해했다.

팔로어가 2만3000여 명인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는 21일 어린이가 강물에 뛰어드는 사진과 함께 “노무현재단이 주최한 ‘노짱 자살 체험’”이라는 내용을 리트윗했다가 12분 뒤 삭제했다. 해당 사진은 2011년 경남 진주시가 주최했던 ‘논개 체험 행사’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정 대표는 “리트윗하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아 일단 지우고 추후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정정하려 했다”고 말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린 뒤 내용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후에도 사실관계를 정정하지 않고 그냥 지워버린 트윗이 5건이었다.

언론학자와 정치학자들은 파워 트위터리안들이 언론이나 정치인에 준하는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데 확인되지 않은 내용 및 막말을 올리고 나중에 해명이나 사과 없이 지우는 것은 여론 양극화를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오피니언 리더#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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