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경남 밀양의 765kV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재개한 2일 공사현장은 하루 종일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하늘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는 밀양 홍보문구가 무색할 정도였다.
한전은 이날 오전 6시 20분부터 인력 290명과 건설장비를 투입해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두 곳(84, 89번 송전탑)과 동화전마을(95번), 상동면 도곡리(109번), 부북면 위양리 도방마을(126번) 등 5곳에서 작업에 들어갔다. 5월 29일 공사 중단 이후 126일 만이다.
20개 중대 20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된 가운데 반대 주민들의 저항은 격렬했다. 특히 밀양시가 단장면 단장리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 4공구’의 현장사무소 옆 움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심했다. 이날 오전 11시 밀양시 직원 60여 명이 지방도 1077호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다 도랑 위에 주민들이 설치한 길이 10m, 너비 3m, 높이 1.9m의 농성용 움막을 뜯기 위해 일제히 진입하자 주민과 수녀, 통합진보당 간부, 환경단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서로 팔을 걸고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문정선 밀양시의원이 철사를 움막 철제파이프에 걸고 목을 매자 주변에서 서둘러 제지했다.
밀양시 직원들은 이후 세 차례 더 철거를 시도했으나 저지선을 뚫는 데 실패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은 현장을 지켜봤다. 이 현장사무소는 송전탑 공사를 위한 주요 자재를 헬기 및 차량으로 실어 나르기 전에 야적해 두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 농성용 움막을 철거해야 작업이 원활하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반경에는 126번 송전탑 주변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이모 씨(73·여)와 박모 씨(71·여)가 허리와 옆구리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109번 공사장에서 저지에 나섰던 강모 씨(63·여)가 쓰러져 한때 의식을 잃었다. 바드리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날 충돌 과정에서 다친 주민과 공무원 등 부상자는 10여 명으로 집계됐다.
한전은 헬기를 동원해 송전탑을 건설할 다섯 곳에 임시숙소와 울타리 설치, 터 닦기 등을 진행했다. 밀양시는 농성 움막 여섯 곳 가운데 두 곳에 대한 철거에 들어가 단장면 고례리 3공구 현장사무소 옆 움막은 뜯어냈으나 단장면 단장리 4공구 옆 움막 철거에는 실패했다.
상동면 도곡리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아주머니들은 “철탑이 들어서면 전자파도 문제지만 땅값이 폭락한다”며 “돈 몇 푼으로 주민들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이들은 “765kV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에선 땅값이 종전의 20∼30% 수준으로 떨어져 농협에서 담보를 잡아주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상동면은 씨 없는 납작 감인 반시의 주산지다.
새누리당 이병희 전 경남도의원은 “야권과 외부 세력은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며 “그러나 송전탑이 밀집한 밀양지역 주민에 대해 한전의 사전 준비와 설득이 미흡했고, 현재 내놓는 보상방안을 송전탑 건설 이후에 성실하게 이행할지도 믿음을 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경남발전연구원 관계자는 “밀양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수용해야 할 때”라며 “밀양에 송전탑을 짓는 것은 반대하면서 소음공해가 심한 동남권 신국제공항의 유치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날 비상근무를 하던 한 시청 공무원은 “한전이 ‘주민 반대가 있으면 공권력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몇 년을 허비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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