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산림과학원 “20%가량 고사”
“재생능력 믿고 인위적 복원 자제를” “멸종가능성 높아 복원 시급” 팽팽
관계기관들 “종자 수집-보존원 조성”
3일 오전 한라산 관음사 코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산개벚나무, 섬매발톱나무, 좀고채목 등 특산수종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가운데 해발 1670m 왕관릉 주변으로 늘 푸른 나무인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 숲이 펼쳐지며 대조를 이뤘다. 해발 1900m 지점에서 북쪽 능선을 내려다보니 구상나무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서리에 덮인 듯 하얗게 말라죽은 구상나무가 수두룩했다.
피라미드 형태로 곧게 펴진 늘 푸른 모습과 죽어서도 기묘한 형상을 간직해 ‘살아서 100년, 죽어서 100년’이라는 별명이 붙은 구상나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한라산 방아오름, 진달래밭, 영실 등 3곳을 표본 조사한 결과 20%가량이 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찬수 박사는 “구상나무는 한라산에만 숲을 형성하고 있어 학술적, 경관적으로 가치가 높다”며 “고사 원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최근 강한 폭풍이나 태풍, 집중호우, 폭염 등 극한 기후와 기후온난화로 죽는 경우가 많이 관찰됐다”고 말했다.
구상나무 고사가 한라산국립공원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복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국제보호지역연구과장은 “구상나무가 위기에 직면해 보존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누가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며 “구상나무는 일정 부분 스스로 재생하는 치유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인위적인 복원을 서둘지 말고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 홍용표 박사는 “얼마나 많은 구상나무가 죽어갈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금부터 대처해도 늦은 감이 있다”며 “지구상에서 구상나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복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구상나무 현지 복원에는 이견이 있지만 관련 기관의 공조체제 구축에 대해서는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라산은 문화재보호구역, 천연기념물, 유네스코(UNESCO) 세계자연유산 및 생물권보전지역 등으로 여러 기관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비롯해 산림청, 문화재청 등은 최근 회의를 열고 구상나무 고사 현황과 보전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종자 수집과 보존원 조성을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하는 의견을 모았다.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분포한 지역은 7.9km² 규모로 해발 1300m 이상 고지대 52곳에 퍼져 있다. 대단위로 군락을 이룬 것은 세계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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