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은이 어머니! 향기가 너무 좋은데, 요리 이름이 뭐죠?” “캄보디아 요리(차크녀이쌋주륵)인데 한국말로는 닭고기생강볶음이에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신사동(옛 신림4동)에 있는 신사시장 고객센터 앞에서는 다국적 아줌마들의 수다와 함께 향긋한 요리가 만들어졌다. 이날 모인 일곱 가족 가운데 네 가족은 한국인과 결혼해 고향을 떠나온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이었다. 이들은 한국 주부들과 함께 신사시장에서 사온 식자재로 고향 음식을 선보였다. 6년 전 캄보디아에서 시집 와 세은이 엄마가 된 로스속헹 씨(29·여)는 닭고기 요리를 만들었다. 몽골이 고향인 김정희(귀화 후 새로 지은 이름·43·여) 씨는 퓨전샐러드를, 베트남댁 웬티다이짱 씨(24·여)는 월남쌈을 만들어 시장을 찾은 지역주민과 상인에게 대접했다. 뜻밖의 잔치에 신이 난 이웃들은 낯선 요리의 이름과 조리법을 물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 일곱 가족의 아이들은 함께 그림을 그리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친구가 됐다. 이들은 모두 신사시장 주위에 사는 이들로 행사가 끝난 뒤에도 “다시 모여 한바탕 놀자”고 뜻을 모았다. 》 ○ 결혼이주여성들 “전통시장, 어렵고 불편해요”
이날 행사를 준비한 곳은 관악구에서 다문화 지원 사업을 펼치는 ‘아시안허브’라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 단체는 포스코의 후원을 받아 사회적 기업 지원센터인 ‘세스넷(Sesnet)’과 함께 결혼이주여성들의 전통시장 초청 행사를 열었다.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38·여)가 다문화가정을 전통시장으로 초대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결혼이주여성을 상대로 한국 생활 적응 조사를 벌인 결과 전통시장 이용 비율이 기대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경제 여건이 좋지 못한 다문화가정의 현실에 비춰볼 때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로스속헹 씨는 “말이 제대로 안 통해 어떻게 흥정해야 할지 몰라 조금 비싸더라도 친절하고 정가제인 대형 상점으로 갔다”며 능숙한 한국어로 설명했다.
아시안허브는 한국인 주부와 다문화가정을 일대일로 연결해 함께 장을 보는 기회를 포스코와 함께 마련했다. 봉사단원들이 아이들을 봐주는 동안 주부들은 짝을 지어 함께 장을 보고 생활 정보도 나누도록 했다. 한국인 이웃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적응도 빨라지고 지역사회에 대한 친밀감도 높아질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게다가 서울 관악구는 영등포구와 구로구에 이어 다문화가정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특히 신사시장이 있는 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부근은 오래전부터 중국동포 비중이 높아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갈등도 깊었다. 최 대표는 “아직은 지역사회에 동화가 덜된 결혼이주여성들이 기왕이면 이웃들과 함께 정을 나누고 한국 문화를 이해할 기회가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사를 마련했고 반응도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포스코 사회공헌실 봉사단원들도 대거 참여해 다문화가정을 도우며 한국의 생활 문화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신사시장 상인회도 행사 취지에 공감하고 손을 내밀었다. 임영업 신사시장 상인회장은 “주말에는 우리 시장을 찾는 상당수 고객이 바로 중국동포와 다문화가정”이라며 “아시안허브와 포스코가 지원하고 있는 만큼 상인들도 결혼이주여성들이 맘 편히 믿고 장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포스코 “전통시장을 다문화의 전진기지로”
포스코는 다문화가정이 안정적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게끔 2010년부터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실천하고 있다. 올해 초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 본사에서 문을 연 ‘카페오아시아(Cafe-O-Asia·‘O’는 모두가 하나라는 의미)’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매장을 운영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밖에도 포스코는 다문화가정의 합동결혼식 및 생활상담과 통·번역 서비스를 지원하는 ‘다누리콜센터’, 결혼이주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위한 ‘다문화가정 영유아 보육센터’를 운영해 왔다. 다문화 확산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과 경쟁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포스코는 앞으로 전통시장을 다문화 정착의 전진기지로 삼고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영 포스코 사회공헌실 그룹장은 “단순한 금전 지원을 뛰어넘어 다문화가정이 한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교육 및 문화 체험이 중요해졌다”며 “이들이 앞으로 전통시장과 지역경제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 카페같은 고객편의센터… “백화점 안부러워요” ▼ ■ 아이 맡기고 쇼핑… 모임장소로 인기
“아이들을 시장 도서관에 맡기고 장을 볼 수 있어 좋아요.”
신사시장을 찾는 고객들은 지난달 새로 들어선 고객편의센터에 대한 칭찬부터 꺼냈다. 전통시장은 편의시설이 열악하다는 편견을 깨고 최신식 카페 형태의 도서관이 들어서자 시장의 명소가 됐다. 지상 4층, 총면적 259m² 규모의 신사시장 고객편의센터 1층에는 공동배송센터가, 2층에는 북카페, 3층에는 고객만족센터가 들어섰다. 고객들은 장을 보다가 쉴 수 있고, 상인들은 교육과 모임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2층 북카페는 ‘아이들을 맘 편히 맡겨 놓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부들의 요청을 반영한 공간이다.
서울시와 관악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고객편의센터가 들어서자 상인들도 쇼핑 환경을 개선해 고객 만족을 높이자며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첫 사업으로 신사시장은 고객편의센터 1층에 배송센터를 세우고 공동배달 서비스에 나섰다. 시장 안에서 3만 원 이상 구매한 경우 2대의 오토바이와 배달원을 활용해 물품을 집까지 무료로 가져다준다. 현재 관악구 신사동 인근인 신원동, 신림동, 조원동, 난향동, 미성동, 난곡동과 이웃한 동작구 신대방1동까지 서비스하고 있다. ▼ 주말엔 외국인 북적… 환전소 갖추고 각국 음식점 입점 ▼ ■ 서울 신사시장은
서울 관악구 신사동에 위치한 신사시장은 1970년대 중반 노점상들이 하나둘씩 모여 만든 평범한 동네 시장에서 출발했다. 한동안 이곳은 우중충한 외관 탓에 “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2006년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상인들의 꾸준한 현대화 노력으로 이제는 지역의 핵심 상권으로 탈바꿈했다.
신사시장의 특징은 각양각색의 다국적 문화다. 일찌감치 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부근은 중국동포들과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지역의 하나로 손꼽혔다. 덕분에 다양한 이국 문화가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공간이 됐다. 현재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식음료 매장들이 시장 내에 입점했다. 또 외국인 고객을 위한 환전소까지 갖췄다. 주말에는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다.
신사시장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2007년 본격화한 공동쿠폰제다. 고객이 시장에서 1만 원어치 물건을 사면 상인은 쿠폰 1장(100원)을 발급하고, 이를 30장 모으면 상인회 기금에서 2000원을 더해 5000원짜리 상품권으로 바꿔준다.
시장 관련 상담 및 문의 △ 동아일보 기획특집팀 02-2020-0636 changkim@donga.com △ 시장경영진흥원 02-2174-4412 jammuk@sija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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