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이혼을 한다. 이혼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결혼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여기는 이도 많다. 아예 혼자 살기로 마음먹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할까. 정치는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에게 ‘현실과 이상의 타협’을 제시한다.》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엔 두 종류가 있다. 애정을 중시하는 경우와 조건을 중시하는 경우다.
애정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애정, 곧 사랑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애정지상주의자라면 혼인신고하고 함께 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애정을 중시하는 경우에도 정작 혼인 국면에 돌입하면 조건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사자는 조건을 따지지 않더라도 부모형제는 따지려들 수 있고 상대방이나 그 부모형제가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는 이 확률이 훨씬 높다고 봐야 한다.
애정파 vs 조건파
애정을 중시해 결혼하려 한다면 둘 사이의 사랑이 가장 큰 이슈다. 이 점은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연애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연히 애정이 식으면 결혼은 물 건너간다. 그렇다고 반전의 기회가 없진 않다.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의 숨은 조건이 눈에 띄면, 애정이 좀 식었더라도 결혼까지 가기도 한다.
조건을 중시하는 경우에는 이미 연애 단계에서 조건에 관한 일차 검토가 이뤄졌기 때문에 혼인 단계에서는 확인만 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연애 초기에 더 깐깐하게 따져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간혹 혼인 국면에 접어들어 재검토 과정을 거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중시하는 조건과 부모형제가 중시하는 조건이 다를 수도 있어 내부 조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전제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혼인 과정은 험난하다.
어떻게 조건을 따질 것인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건을 따져 연애를, 그것도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실 이런 이유로 적지 않은 사람이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청춘을 다 보내기도 한다. ‘아무나하고 연애를 할 수는 없다’ ‘연애를 하면 그 사람과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 어렵다.
당신의 ‘시장가치’는?
조건을 따지기로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야무지게 따져라! 이것이 내 생각이다. 조건을 따지는 것과 관련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조건에 관한 철저한 평가다. 결혼시장에서 나는 어느 정도의 상품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본인의 조건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거나 과대평가를 함으로써 불행을 자초한다.
‘내가 보기에 나의 시장가치는 이렇게 높은데, 왜 남들은 온당하게 평가해주지 않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억울해하지만 시장은 냉정하다. 정말로 시장가치가 높으면 소비자들이 절대 그냥 놔둘 리가 없다.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내가 원하는 조건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 쉬워 보이지만 잘 해내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상당수는 자신이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잘 모른 채 장보기에 나서곤 한다. 그냥 시장에 나가봐서 좋은 게 보이면 사겠다는 식인데, 매일 사다 먹는 반찬거리도 아니고 일생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남들이 좋다는 것을 앞다퉈 구입하는 현상이다. 재력, 학력이 좋아 보이면 일단 사고 보는 식이다. 이런 묻지마 투자는 하다못해 주식을 살 때도 피하는 일이다.
‘여러모로 괜찮다’의 함정
또 다른 현상은 ‘평균점수’가 높은 쪽을 일단 선호하는 현상이다. 재력, 학력, 성격 등 조건을 전반적으로 평가해 평균점수가 높으면 더 좋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진정 무모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평균점수는 높더라도 결정적인 하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이 내가 가진 결정적 하자와 중첩되는 것이라면 나중에 엄청난 분란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평균점수는 낮아 보이지만 결정적인 장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나의 결정적 단점을 보완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그렇다! 조건을 따질 때에는 평균점수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평균점수 높아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 우리 주변에 부지기수다.
이보다는 오히려 딱 한 가지 조건만 보고 선택하는 편이 더 성공적일 수 있다. 딱 한 가지만 본다면 어떤 것을 봐야 할까. 나의 결정적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장점이 그것이다. 더욱이 당신이 평균점수가 높은 쪽이라면 더욱더 그런 선택이 빛을 발할 것이다.
내가 관찰해본 바로는 누구에게나 결정적 단점이 있다. 그 단점을 배우자가 잘 보완해주는 경우 결혼생활이 원만할뿐더러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그 반대인 경우에는 서로의 단점을 더 악화시킴으로써 결혼생활이 삐걱대고 사회적으로도 하향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내가 결혼해야 할 즈음에 어떤 분이 자기는 결혼을 앞두고 재력, 학력, 외모 등 항목별 점수표를 만들어 평균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을 선택했다고 조언해줬다. 그분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다면 그 말에 솔깃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인생은 평균점수가 높다는 ‘집안 그럭저럭 좋고, 학력 그럭저럭 괜찮고, 외모 그럭저럭 봐줄 만한 사모님’을 만나면서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 사모님은 남편이 위기에 처했을 때 팔을 걷어붙이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지도 못했고, 심리적으로 위로해주지도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몹쓸 처지가 남편 탓이라고 원망만 했으며, 잘나가는 처가 식구들과 비교만 했다. 그분을 보면서 늘 든 생각은 ‘차라리 집안이나 학력이 떨어지더라도 생활력이나 미모가 뛰어난 사모님을 만났더라면 더 잘 풀렸을 텐데’ 하는 것이다.
나는 그때 이미 그분과 생각이 달랐다. 나의 결정적 결점, 그것을 보완해줄 상대, 평균점수가 낮더라도 그 점에서 높은 점수를 가진 누군가와 결혼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애정 지상주의자이기 때문에, 더욱더 기타 조건을 무시하고 결혼을 강행했다. “지뢰 밟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내가 아는 남녀 후배를 서로 소개해준 적이 있다. 내 예상이 적중했던지 두 사람은 급속하게 가까워졌고 두 달도 안돼 결혼하겠다며 날 찾아왔다. 그런데 곧바로 나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자 후배의 어머니가 극력 반대한다는 것이다. 외아들인 후배의 어머니는 아들이 부잣집 딸을 만나 경영인의 꿈을 이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결국 그 혼사는 깨졌고 내 후배는 이모가 소개했다는 부잣집 딸에게 장가를 가고 말았다.
그때 정말 열심히 말렸다. “인생사 도처가 지뢰밭인데, 초연해져야 땅에 묻힌 지뢰가 보인다” “화려한 것에 현혹되지 말고 초심을 따르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하지만 착한 아들이고 싶었던 내 후배는 “어머니 뜻에 따르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결혼으로 그가 행복해졌을까. 경영인으로서 꿈을 이뤘을까. 아니다. 오래지 않아 이혼소송에 들어갔고, 정말 ‘처절한 소송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때 다시 날 찾아온 후배가 이런 말을 남겼다.
“선배님, 지뢰를 밟은 것 같습니다.”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고 나면 죽을 때까지 복구가 어렵다. 조건? 가족을 포함한 남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초연하게 따질 일이다. 그래야 최소한 후회가 남지 않는다. 또 남 탓으로 세월을 보내지도 않는다. 과대포장은 죄가 아니다
많은 예비부부는 예단 등 혼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조건과 관련해서는 내가 따지는 만큼 상대도 따진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때 과대평가를 받아서도 안 되겠지만 과소평가를 받아서도 안 될 일이다. 특히 과소평가를 받아 내가 원하는 상대를 놓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맛난 사과를 기왕이면 잘 포장해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포장의 기술은 현실 정치에서도 자주 애용하는 방식인데, 더 젊어 보이도록 머리 염색을 한다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이력을 쌓아둔다거나 시민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결혼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이제 일반적이다. 학력을 다소 부풀리기도 하고 성형수술을 받기도 한다. 과거처럼 날것 그대로 시장에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장 추세가 이렇다면 여러분도 어쩔 수 없다. 날것 그대로 승부를 겨루기보다는 잘 포장된 상태, 그것도 다소 과대포장된 상태로 경쟁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포’는 이제 죄가 아니다.
조건을 따져 상대방을 선택해서 연애를 했고, 그 연애가 성공적이어서 상대방과 결혼을 하기로 합의했더라도 혼인 단계에 접어들면 조건에 관한 재검토가 이뤄진다고 앞서 지적했다. 이때 가장 큰 난관이 바로 ‘가족 검증’이다. 평상시에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던 가족도 이때는 사명감에 불타올라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가족의 범위에는 한정이 없다. 고모, 삼촌, 외숙모까지 끼어들려 하기 때문이다. 한두 마디 거드는 이들의 발언에 부모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고 우리 사회도 서서히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가고는 있지만, 아직 현실은 그렇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최근에는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비정규직이 일반적인 상황과 맞물려 부모에 대한 결혼비용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역전 현상조차 나타난다.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신혼집조차 마련하기 어렵고 신혼살림도 장만할 수 없는 현실! 그런 현실에서는 혼인 단계에서 부모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다. 상견례와 입당 자격심사
부모가 정말 현명하다면 부모에게 모든 판단을 내맡겨도 관계없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의 결혼 앞에서 현명해지기 어렵다. 오히려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비이성적이 되는 순간이 이때가 아닐까 싶다. 거의 괴물로 변하기도 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지적에 화를 벌컥 내겠지만, 절대 화부터 낼 일이 아니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이 자녀에게 일생일대의 선택이기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과 실패한 자기 결혼에 대한 원망, 집안 내의 체면까지 뒤섞어 비이성적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강요하기 일쑤다. 그래서 사랑하는 청춘남녀의 달콤한 꿈을 깨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혼수전쟁, 그 와중에 파혼에 이르거나 결혼 직후 결국 그 후폭풍을 이기지 못해 헤어지는 커플, 의외로 많다.
성혼으로 가는 단계에서 크게 다가오는 것이 혼수다. 혼수 문제를 성공적으로 돌파해내려면 정말 정치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을 하는 것은 상대방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집안과 결합하는 과정이라는 것, 설명이 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새로운 정당에 입당하는 것과 같다. 좀 더 정확하게는 기존의 당적에 더해 새로운 당적을 하나 더 갖는 것이다. 2개의 당적을 허용받으려면 먼저 양당의 지도부로부터 재가를 받아야 한다. 차제에 양당이 아예 합당을 하거나 연립정부를 구성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낮은 단계의 정책연대조차 쉽지 않다. 두 집안이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결혼식까지 치러내기가 매우 어렵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낼 것인가.
먼저, 당사자인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야 한다. 반드시 복수(複數) 당적을 관철해내자는 결의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때 어느 한 쪽이 유약해서 자꾸 회의론에 빠지면 다른 한 쪽이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고, 결혼을 한 뒤에도 앙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일단 의기투합했다면, 그다음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두 집안의 들끓는 여론을 어떻게 평정해나갈 것인가. 울다 지쳐 쓰러지기
이것은 사실 평소 각자가 집안 내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와 관련이 깊다. 집안에서 존재감이 미약하거나 영향력이 별로 없는 일개 피지배계층에 불과했다면 여론 평정은커녕 역으로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갈등을 불사하고 강공책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기존의 노선을 따를 것인지 심각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 새삼스러운 강공책? 부담이 따르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평소 집안에서 영향력이 꽤 있다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경제적 자립 역량을 가졌거나 집안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면 상황을 훨씬 더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 당내 지분이 많은 경우다. 이 경우에는 당내 불만을 다스리는 약간의 유인책만 쓰면 된다. 미약한 공약도 의외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배우자가 생김으로 해서 얻어질 이득에 관해 언급하는 것도 물론 보탬이 될 것이다.
역시, 가장 좋은 상황은 각자가 자기 집안을 책임지는 것이다. 내부 분란에 공동 대응하는 차원에서 정보교류를 하고 또 전략도 세워야하겠지만,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하는 것은 오히려 분란을 더 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니, 당신 동생이 나에 대해 그런 말까지 했단 말이야?’ 이것도 두고두고 원한으로 남는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적당히 덮을 것은 덮어가면서 상대방의 자존감을 지켜주면서 반대여론을 하나씩 극복해나가야 한다.
반대가 아주 심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강력한 당근, 곧 뭔가를 제공하거나 양보하거나 하다못해 공약이라도 해야 한다. 공약? 꼭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정말로 결혼을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단, 문서로 써주는 것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배수진을 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데, 배수진에는 공세적 방법과 수세적 방법이 있다. 공세적 방법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가출’이다. 수세적 방법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울다 지쳐 쓰러지는 것’이다. 이 두 극단적 방법 사이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을 때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리 선택해야 한다. 반대하는 누나에게는 평소 갖고 싶어한 명품 백을 혼수로 선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딸을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는 아빠에게는 “나, 죽어버릴 거야”라고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권력구도로 본 부모의 심리
입당을 앞두고 자격심사 과정에서 뜨겁게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말로 결혼 당사자들을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고 집안을 걱정해서 그럴 수도 있다. 당내 권력구도 변화하고도 관련이 깊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사람이 입당하면 당내 권력구도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부모와 아들 간 권력구도에 며느리가 영향을 미치고, 부모와 딸 간 권력구도에 사위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권력구도의 변화 결과 나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 누구나 견디기 어렵다.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 딸에게 집착하는 아버지가 특히 그러하다.
특히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 그중에서도 아들에 대한 애정이 상대적으로 또 생물학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자주 장애요인으로 대두한다. 아들을 빼앗길 것만 같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며느릿감에 대해 공격적이다. 그 연장선에서 아들의 처가에 대해서도 공격적이다. 당연히 혼수 문제로 트집을 잡을 확률도 높다. 혼수가 적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는 뜻이고 결혼 후에는 아들을 가로채기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된 말로 혼인 과정에서 군기를 잡아놔야 결혼 이후에도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기조로 대처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처가에 아들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심정인 것이다. 일종의 자기 영역 지키기라고 할 수 있으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파혼으로 이끌고 갈 정도로 심각하다면, 결혼 당사자들로서는 방어 전략 내지 극복 전략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때 활용하면 좋은 전략이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적용하고 있다는 ‘공세적 방어(offensive defence)’ 전략이다.
일단 부당한 요구라 할지라도 수용하는 척해야 한다. 물론 ‘척’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이런 요구는 당장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약속을 하는 것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일단 약속을 하면 상대방도 계속 강요하기 어렵다. 이때 ‘읍소’ 전략도 효과적이다. 나중에 발톱을 드러내더라도 결혼을 성사시켜야 하는 국면에서는 무릎 꿇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적지 않은 경우 부모가 정말로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군기 잡기 차원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따라서 요구를 거둬들일 만큼의 충분한 명분을 제공하는 차원에서도 납작 엎드리는 것이 좋다. 이것도 도저히 못하겠다면, 입당 포기, 파혼을 불사하면 되시겠다. 선(先) 후퇴, 후(後) 반격. 단, 후퇴도 반격도 강력하게. 공세적 방어 전략의 핵심이다. ‘분할통치’
내 경우에도 뜻을 관철하기 위해 공세적 방어 전략을 쓴 바 있는데, 맨처음 한 일은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중매시장으로 나가서 열심히 선을 본 것이다. 처음부터 모두 거절할 요량으로, 선을 보러 나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나갔다. 물론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혼사는 거절했고, 마침내 어느 시점에 도달하니까 혹시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를 물어왔다. 그때도 그냥 가끔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말했다. 시간이 더 지나니 부모님이 지칠 대로 지쳐 먼저 상견례를 제안해왔다. 그 사람이 지금의 아내다.
부모를 상대로 정면대결로 가는 것은 연속극의 호재이긴 하지만 원하는 바를 달성할 가능성이 낮은 방법으로 봐야 한다. 설령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내 배우자를 ‘눈 밖에 난’ 며느리 또는 사위로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좀 더 현명한 전략을 써야 하는 것이다.
집안 내 교통정리와 관련해 로마제국 시절부터 제국이 애용하던 ‘분할통치(divide and rule)’도 유효한 전략이다.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당권파의 힘을 약화시켜야 입당이 가능하다면, 당권파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결혼도 안 한 처지에 집안 분란만 일으킨다는 악평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약한 고리를 찾아서 하나씩 내 편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 입당을 반대하는 사람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반대의 강도 역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해소하기 쉬운 반대 이유를 가진 사람, 반대 강도가 약한 사람부터 공략해야 한다. 한두 명씩 반대자가 찬성으로 돌아서서 찬성자가 과반을 넘어서면 여론의 반전 속도는 빨라지기 마련이다. 그 결과, 어느 순간 찬성이 대세로 자리 잡는다. 이때는 반대자들도 심리적 부담을 느껴 적극 반대에 나서기 어렵다. 나중에 원망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이 꼭 허니문일까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어떤 신혼여행을 꿈꿀까. 아마 낭만적인 영화 속 장면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신혼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꼭 평온하거나 개운하거나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허니문은 꿀처럼 달콤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신랑도 신부도 거의 탈진 상태에 놓인다는 말이다. 결혼식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식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이뤄지는 모든 혼인 과정의 일, 특히 살림집과 혼수 장만을 둘러싼 시(媤) 월드와 처(妻) 월드의 신경전과 힘겨루기에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정치든, 결혼이든 둘러싼 문화가 나아져야 그 속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이 편해진다. 특히 집 장만, 혼수와 관련된 결혼 문화는 꼭 개선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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