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노동자, 시위대에 휩쓸려 체포당한 뒤 고문과 재판을 받은 자영업자, 항쟁의 기록을 남기려다 구타당한 사진기자, 9월부터 시위 준비를 한 대학생, 출동 중 사고로 숨진 군인을 본 계엄군….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부마항쟁 당시의 기억과 현장을 고스란히 담은 부마(釜馬)민주항쟁 증언집 부산편인 ‘치열했던 기억의 말들을 엮다(사진)’가 나왔다. 마산편은 2011년 출간됐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2006년부터 항쟁 참여자 55명의 증언을 모았다. 1권은 부산대 동아대 등 대학생 증언을 모아 560쪽으로, 2권은 노동자 자영업자 재야인사 언론인 군인들의 증언을 모아 540쪽으로 엮었다.
당시 근로자였던 강의식 씨(63)는 10월 18일 퇴근길에 시위대에 휩싸인 후 서구 충무동 육교 앞 골목에서 형사에게 붙잡혀 일주일간 군인들로부터 모진 구타와 고문을 당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증언했다. 그는 “아무 죄도 없이 29일간 구류생활을 하다 풀려났으나 그 당시 당한 폭행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고 밝혔다.
가내수공업을 하던 한영식 씨(60)는 10월 16일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서부경찰서 앞에 모여 있던 시위대를 향해 쏜 최루탄에 눈을 맞아 쓰러졌다. 계엄군은 그를 시위대로 몰아 경찰서로 끌고 가 일주일간 유치장에 가둔 뒤 “배후를 대라”며 물고문과 구타를 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당시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려던 국제신문 김탁돈 기자(60)는 광복동에서 사진을 찍던 중 계엄군이 “이 새끼 기자면 다야?”라며 폭행을 당했다. 경찰차(닭장차)에 실려 서부경찰서로 간 그는 경찰봉으로 얻어맞았던 기억을 더듬어냈다. 당시 계엄군이었던 이재돈 씨(72)도 출동 중 지프차와 트럭이 충돌해 장교 2명과 사병 3명이 사망한 사실도 털어놨다.
부산대에 다녔던 고호석 씨(57), 동아대생이었던 변재관 씨(53), 고신대생이었던 이일호 씨(58), 부산교대에 다녔던 설경혜 씨(55) 등은 항쟁의 성격과 시위 준비, 시위 참여, 경찰서 연행 등의 과정을 상세하게 적었다.
증언집은 1, 2권을 700권씩 찍어 국내 주요 도서관과 대학, 연구기관, 관련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김재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제 관련자 명예 회복과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만큼 지금까지 미루어졌던 부마항쟁의 역사적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며 “증언집이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