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사러가시장 인근 왕복 6차로. 할머니가 갑자기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좌우는 살피지도 않고 도로 반대편만 쳐다봤다. 할머니가 중앙선을 넘은 직후 승용차 한 대가 쏜살같이 할머니 등 뒤를 지나쳤다. 자칫 인명 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 잠시 후 한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도로에 들어섰다. 이곳은 지난달에만 무단횡단으로 2명이 사망한 현장.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건넜다. 현장에는 ‘무단횡단을 하지 맙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만 있을 뿐 어떤 안전 시설물도 없었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발생해도 경찰은 사고 원인 분석과 수사에 치중하고,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에 대한 사후 조치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는 게 보통이다.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은 전국 최초로 6월 말부터 교통사망사고가 발생하면 3일 이내에 시-경찰 합동 현장 점검반을 투입하고 있다. 사고 원인을 정밀 분석해 차선 도색, 신호 조정, 안전표지 설치와 같은 단기 사업은 3개월 이내에 마치고, 도로 구조 개선 등 중장기 과제도 1∼2년 이내에 공사를 마치도록 계획하고 있다.
10일 오후 신길동 사고 현장에서는 서울시, 영등포경찰서, 영등포구, 도로교통공단, 도로사업소가 함께 2차 현장 진단에 나섰다. 왜 무단횡단이 많은지 원인부터 파악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이 대로는 5, 6년 전까지 시장 앞 좁은 골목이었다. 도로 개선 사업으로 길을 넓혔지만 상인과 주민들은 예전 습관대로 서슴없이 무단 횡단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단 횡단을 막기 위해 먼저 “도로 가에 보행자 방호 울타리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시장 상인들의 민원 때문에 설치가 어렵고 방호벽 틈 사이로 무단 횡단을 계속 할 수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육교를 설치하자”는 의견에는 “주로 노인들이 무단 횡단을 하는데 육교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뒤따랐다.
시와 구, 경찰 등은 논의 끝에 중앙 차선에 분리대를 설치해 무단 횡단과 불법 U턴·좌회전을 차단하기로 합의했다. 사고 현장 외에 신길동 가마산로 주변에도 무단 횡단이 잦기 때문에 750m 구간 전체에 분리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추가로 단속 카메라도 설치키로 했다.
강진동 서울시 교통운영과장은 “합동 점검반을 구성한 뒤 사고 직후에 현장에 나와 의견을 나누다 보니 문제점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며 “이처럼 간단한 결정이 과거에는 몇 년씩 걸리곤 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 지점 개선 공사는 안전행정부가 지원하는 ‘교통사고 잦은 곳’(3년 내 사망 사고 3건 발생) 사업에 따라서만 이뤄지다 보니 사망 사고가 나도 현장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는 합동 점검반을 운영한 뒤 9월 말까지 3개월 동안 교통사고가 발생한 88개 지점을 합동 점검해 음주운전 등 단순 부주의 사고를 제외한 41개 지점에 대해 시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보행자 방호 울타리, 과속방지턱, 시선 유도 시설 등 쉽게 조치할 수 있는 10곳은 이미 개선을 마쳤고, 31개 지점에 대해서는 개선을 추진 중이다. 도로 구조 변경 등 중장기 과제는 ‘교통사고 지점 개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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