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을 통해 전기를 보낼 예정이던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 4호기에 설치된 제어케이블이 성능시험에서 불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내년 여름 완공 예정이었던 신고리 3, 4호기의 가동 시기가 수개월 지연될 것으로 보여 내년에도 전력난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고리 3, 4호기의 제어케이블을 재검증한 결과 두 단계로 이뤄진 성능시험 중 첫 번째 단계도 통과하지 못해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신고리 3, 4호기의 제어케이블은 원전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을 일으킨 JS전선이 생산하고 새한TEP가 검증한 제품으로 원전 비리 수사 과정에서 품질서류 위조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한수원과 정부는 이 제품들이 시험 결과를 위조한 다른 케이블과 달리 “실험조건이 규정에 맞지 않았다”며 곧바로 교체하지 않고 한국기계연구원에 재시험을 의뢰했다. 하지만 재시험 결과에서도 성능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결국 전량 교체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8월과 9월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었던 신고리 3, 4호기의 공사 일정은 상당 기간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제어케이블은 원자로 내부의 고열을 견뎌야 하는 등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해 현재 국내에서는 JS전선과 LS전선 등 2개 업체만 생산해 왔다. 문제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JS전선과 LS전선이 제어케이블 등 원전 부품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벌인 사실이 적발돼 LS전선의 제어케이블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결국 부품 교체를 위해서는 해외에서 제어케이블을 수입해야 하는데 납품사 선정과 최소 4∼6개월이 걸리는 국내 안전성 검사 등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부품교체 과정에만 1년 이상이 소요돼 이들 원전이 2015년에나 가동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빠듯했던 전력 공급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신고리 3, 4호기의 가동 지연이 불가피해지면서 내년에도 전력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고리 3, 4호기의 설비용량은 각각 140만 kW에 이른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내년 여름 최대 전력수요는 8166만 kW인 반면에 현재 원전 비리로 가동이 중단된 원전 4기가 모두 재가동되더라도 전력공급 능력은 8220만 kW에 그친다. 전력소비가 예상을 뛰어넘거나 발전소 한두 기만 고장 나도 대규모 정전 사태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한편 신고리 3, 4호기 가동이 늦춰지면서 밀양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단체와 주민들의 저항도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이달 초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며 “내년 여름철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신고리 3호기 가동에 앞서 밀양 송전탑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도 공사를 강행한 정부와 한전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사회적 공론화 기구 구성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공사 재개 보름째인 이날 한전은 차량을 동원한 자재 수송에 나서면서 주민과 다시 마찰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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