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전북]25년 만에… 호남 들녘 모든 농작물 풍년 “올해만 같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호남 들녘에 ‘풍년가’가 드높다. 2년 연속 흉년에 이은 풍년이어서 더더욱 반갑다. 20일 수확기를 맞아 황금들녘을 이룬 전남 나주 산포면에서 한 농민이 잘 여문 볏단을 든 채 밝게 웃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호남 들녘에 ‘풍년가’가 드높다. 2년 연속 흉년에 이은 풍년이어서 더더욱 반갑다. 20일 수확기를 맞아 황금들녘을 이룬 전남 나주 산포면에서 한 농민이 잘 여문 볏단을 든 채 밝게 웃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올해만 같으면 농사지을 맛이 나죠.”

가을걷이가 한창인 요즘 호남 들녘에 모처럼 풍년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해 수확기 태풍과 지지난해 여름철 물난리로 연이어 겪은 흉년 뒤에 찾아온 풍년이라 농민들의 표정은 한층 더 밝다. 쌀뿐만 아니라 무 배추 고추 등 김장채소와 배 사과 등 과일까지 고루 풍작을 이뤘다. 여름 날씨가 무더워 일조량이 풍부했고 큰 태풍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종화 전남도 친환경농업과장은 “농정 공무원 생활 25년 만에 올해처럼 모든 농작물이 골고루 풍년인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 호남 들녘에 드높은 풍년가


20일 오전 전북 정읍시 이평면 배들평. 대형 콤바인으로 벼 수확에 바쁜 농민 김춘성 씨(55)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환하다. “벼 가마가 묵직합니다. 근래 들어 가장 농사가 잘된 것 같습니다.” 30여 년 동안 전업으로 벼농사를 지어 온 베테랑 농부인 김 씨는 풍년 농사를 하늘 덕으로 돌렸다. 8월 초중순 벼 목이 나오는 출수기와 9월 초 벼가 익는 등숙기에 고온으로 일조량이 풍부했다는 것. 수확기에 불청객처럼 찾아와 들판과 과수원을 휩쓸고 지나가는 큰 태풍이 없었던 점도 꼽았다. 지난해는 수확기에 잦은 태풍으로 전남 해안과 전북 부안 김제 들판 곳곳에서 벼이삭의 수분이 빠져나가고 잎이 하얗게 변한 뒤 말라 죽는 백수현상이 나타나 큰 피해를 봤다.

생산량뿐만 아니라 품질도 작년보다 좋다는 것이 농민들의 얘기다. 출수기와 등숙기에 기상이 좋고 밤낮의 일교차가 커져 이삭당 온전한 낟알 수가 증가했고 낟알이 잘 영글었기 때문이다. 농민 이철용 씨(72·김제시 만경읍)는 “수확을 해보니 필지(1200평)당 벼가 3, 4가마 이상은 더 나오는 것 같다. 작년에는 태풍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올해는 얼굴을 펴게 됐다”고 말했다.

김제시 농업기술센터의 조사 결과 호남평야의 올해 쌀 생산량은 10a(300평)당 550∼560kg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작년보다 12%가량 많은 것이다. 전북지역 전체 쌀 생산량은 작년보다 10.6% 증가한 68만8000여 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전남도는 올해 지역 쌀 수확량이 83만5000t으로 지난해 70만 t보다 2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남지역 쌀 수확량은 2000년 105만 t(전국 520만 t), 2008년 90만 t(484만 t), 2009년 91만 t(491만 t), 2010년 84만 t(429만 t), 2011년 82만9000t(422만 t)으로 계속 줄어왔다. 경작면적이 지속적으로 줄고 흉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쌀값 오름세도 농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9월 말 기준 쌀 한 가마(80kg)의 가격은 17만5000∼18만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6만7000원보다 5% 가까이 올랐다. 2년 동안의 흉년으로 쌀 재고량이 많지 않아 풍년 농사에도 쌀값은 안정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 김장 채소와 과일도 풍작

벼뿐만 아니라 고추와 무 배추 등 김장 채소도 풍작을 이뤘다. 고추는 병충해가 거의 없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 지난해의 절반 값에 거래되고 있다. 무 배추도 지난해 가격이 높아 재배 면적이 늘어난 데다 작황도 좋아 공급 과잉까지 우려되고 있다. 전남도는 참깨 고추 배 등 농산물 생산량이 평년보다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풍년 들판에 그늘이 없는 건 아니다. 광주전남농민회는 지난해에 비해 쌀 작황이 좋지만 추석 이후 벼멸구가 확산돼 피해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수확량이 늘었지만 벼멸구 때문에 상품성이 떨어지는 쌀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 일부 산간부에도 벼멸구가 발생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은 지역 벼 재배면적 17만 ha 가운데 1만2000ha에서 벼멸구가 발생했고 피해가 생긴 곳은 24ha라고 밝혔다. 10여 년 만에 중국에서 유입된 벼멸구는 방제 약제에 내성이 생겨 박멸에 어려움이 있었다.

벼멸구가 나타나면서 수확량 감소 이외에 친환경 인증 탈락을 우려하는 농민도 늘고 있다. 일부 친환경 농가에서 농약을 사용해 벼멸구를 방제했기 때문이다. 전체 친환경 인증 벼 재배농가 5만3200농가 중 18∼19%가 인증 탈락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환경 인증이 취소되면 보조금도 취소돼 이중고가 우려된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벼멸구는 최저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죽는다”며 “우려했던 만큼 수확량이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회는 일부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나락을 시중가격보다 저렴하게 구매하고 있어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풍년으로 쌀값 하락이 예상되니 미리 싼값에라도 팔라고 종용한다는 것이다. 박형배 광주전남농민회 사무처장은 “쌀 목표가격이 8년째 17만83원(80kg들이)에 동결됐지만 정부는 올해 고작 4000원을 인상하려고 하고 있다”며 “쌀 목표가격이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인상된다면 나락 야적 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오·이형주 기자 kokim@donga.com
#벼수확#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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