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자영업자 등 민간 부문의 소비가 위축되면서 기업 고용이 줄어 최근 3년 반 동안 약 31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업과 정부가 침체된 경제를 억지로 끌어왔지만 가계 등 민간 소비가 위축되면서 성장세가 둔화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민간소비 증가율은 상반기 GDP 증가율(경제성장률)보다 0.3%포인트 낮은 것이다. GDP를 구성하는 다른 부문인 정부 지출과 수출 증가율은 GDP 증가율(1.9%)을 크게 웃돌았다. 경제를 이끌어가는 ‘삼두마차’ 가운데 민간소비만이 유독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소비가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정도를 분석한 결과 2010년 이후 지금까지 민간소비가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속도로 증가했다면 31만4320개의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연평균 10만 개 가까운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 고용률을 높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취업유발계수를 살펴보면 민간소비지출이 10억 원 늘어날 때 15∼16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발생한다.
문제는 가계가 지갑을 닫으면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고 기업이 고용을 줄이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본격화한 2010년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09년 초반까지만 해도 민간소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거나 때로는 성장률을 넘어서며 전체 경제를 이끌었다.
2010년 이후 쪼그라든 소비증가율은 2011년 4분기 이후 아예 1%대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민간 소비증가율이 1%포인트 떨어지면 GDP 증가율은 0.5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소비가 줄면 성장률이 감소해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불안정한 고용상황은 가계 소비를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만큼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면 장기 침체의 질긴 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가계가 지갑을 완전히 닫기 전에 정부와 국회가 소비를 진작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성장률이 증가하며 가계 소득이 늘어도 소비심리가 얼어붙는 현상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정부는 가계부채가 더이상 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소비심리가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저소비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게 국회도 기업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에 노력하는 등 국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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