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비춰 당뇨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해 ‘네이처 포토닉스’ 인터넷판에 최근 소개된 하버드대 의대 윤석현 교수는 1987년 KAIST 전기전산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1년 뒤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꿔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광통신 벤처회사 창립 엔지니어링 매니저로 일했다. 그러곤 2005년 10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됐다. 그는 교수로 임용된 비결에 대해 “바이오와 의학, 물리, 전산 등 융합 기술의 배경을 알고 있고 벤처 창립 멤버였다는 점이 좋게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윤 교수처럼 전공과 다른 분야로 진출하면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공계 장학생이 비이공계로 진출하면 그동안 받았던 장학금을 회수하는 ‘이공계 지원 특별법’이 내년 처음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적용 범위의 적정성을 놓고 과학계 안팎의 논란이 뜨겁다.
이공계 학생들이 의사 변호사 등 전공과 다른 직업으로 진출한 것은 그동안의 ‘이공계 기피 현상’과 맞물려 있다. 이 때문에 이공계 대표 대학인 KAIST 국감 때면 높아지는 의학, 치의학, 법률 전문대학원 진학률이 국회의원들의 단골 질타 메뉴였다. 22일 KAIST 국감 자료에 따르면, KAIST 졸업자 가운데 의학전문대학원 진학률은 2008년 6.24%에서 올해 11.10%, 치의학전문대학원은 1.10%에서 1.55%,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0.18%에서 0.60%로 전체적으로 2배가량으로 늘었다. 이날 국감에서 무소속 강동원 의원과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은 “1인당 지원 장학금이 학기당 659만 원인데 올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진로를 바꾼 학생 수가 124명이다. 올해만 국민 세금 65억 원이 엉뚱한 곳으로 간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먹튀 논란’은 비단 KAIST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장학재단 등에 따르면 2006∼2009년 졸업한 전국의 이공계 연구장려금 수혜자 3140명 가운데 이공계 대학원으로 진학한 학생은 1558명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1년 6월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공계 지원특별법’ 개정안에 연구 장려금 회수 조항을 신설했다. 2012년부터 2년 이상 수혜자가 대상이어서 실제로는 내년부터 적용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비이공계 범위를 인문사회, 예체능, 의학계열로 정하고 의학계열에는 의학, 치의학, 한의학, 한약학, 수의학, 간호학, 보건학을 포함시켰다. 이 규정대로라면 의학, 치의학, 법률 전문대학원 진학자는 모두 회수 대상이다. 문제는 학문의 분화로 비이공계의 범위가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 현재 대학설립 운영규정에 간호학, 보건학, 한약학이 이공계(자연계열)로 분류돼 반발이 예상된다.
이공계 지원특별법이 다양한 선택을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이공계 지식을 가진 인재들이 판사와 검사, 변호사, 외교관도 돼야 그 분야의 발전은 물론 오히려 과학기술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강성모 KAIST 총장은 “21세기 과학기술에 기여할 분야가 의·과학이며 KAIST 내에도 의과학대학원이 있어 다른 전공자가 의학전문대학원을 선택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법학전문대학원은 확실한 비이공계인 만큼 장학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2012년 국감 당시 서남표 KAIST 총장은 “과학기술 인재가 의학과 법학 분야에도 진출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공대를 나와 의료 분야에서 걸출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공계 여부를 떠나 사회 공헌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맹수석 충남대법학전문대학원장은 “법학전문대학원에 다양한 전공자가 들어오면 유능한 법조인을 양성하고 특허분쟁 시대에 국제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며 “개인의 직업 및 학문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학문 융합의 추세도 거스르는 비이공계에 대한 경직된 해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KAIST 관계자는 “일부에서 이공계 대학에 입학할 때 진로를 바꿀지를 신중히 가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젊은 학생의 희망 진로는 수시로 바뀔 수 있어 이를 선별해 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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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5 06:42:44
장학금 받고 의대로 가게 하면 거의 그럴걸... 장학금 받을 때 서명을 받아라 전공 바꾸면 이자처서 갚겠다는 서명을..
2013-10-25 07:11:03
당연히 토해내는 게 맞지. 먹튀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내놓는 게 맞지.
2013-10-25 06:19:16
의대로 갔으면 앞으로 돈 많이 벌테니, 이공계 진출하는 어려운 길을 택한 후배 학생에게 장학금 기여하듯 흔쾌히 게어내면 될일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