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평범한 골목길서 엿보는 ‘서울의 속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5일 03시 00분


동갑 김지은-유혜인씨 의기투합
익선동 등 동네지도 4개 제작

서울의 동네 역사를 담은 지도 ‘아마추어 서울’을 제작하는 디자이너 유혜인 씨(위)와 김지은 씨가 지도를 배경으로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의 동네 역사를 담은 지도 ‘아마추어 서울’을 제작하는 디자이너 유혜인 씨(위)와 김지은 씨가 지도를 배경으로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지도 ‘아마추어 서울’에는 유명한 관광지나 이름난 맛집이 없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나 랜드마크 건물도 안 보인다. 천편일률적인 관광지 소개 지도와는 많이 다르다. 서울 곳곳의 평범한 동네와 사소한 역사를 담은 이 지도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서울은 지도 제작자들이 주관적으로 가볼 만한 장소를 선정해 장소에 얽힌 소박한 정보를 담은 서울의 동네 지도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29세 동갑내기 디자이너 김지은, 유혜인 씨가 다른 대학 동기 두 명과 의기투합해 지도를 만들었다. 2009년 종로구 재동 계동 원서동 일대를 담은 첫 지도가 나왔다. 두 번째인 종로구 익선동 지도(2012년)에 이어 올해 종로구 서쪽 홍파동 행촌동 일대 지도와 163, 301번 버스 노선을 타고 여행하는 지도 등 총 4개가 탄생했다.

아마추어 서울은 주목받지 못한 지역을 주목한다. 서울에 오는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종로구 삼청동 북촌마을이나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대신 낙원상가 옆 익선동 일대, 사직터널 근처 홍파동과 행촌동을 다루는 식이다.

익선동 지도에는 과거에 성업했던 익선동 일대 요정을 중심으로 들어섰던 한복집, 세탁소, 전통악기점 등이 표시돼 있다. 지도 뒷면에는 이광수의 ‘흙’에 묘사된 과거 익선동 모습이 그대로 인쇄돼 있다. “익선동 조고만 초가집이라고 하면 한 선생 집이다. 방이 좁고 래객(來客)은 많으니까 턱없이 넓은 삼간 마루에는 당치도 아니한 유리분합을 들였다.”

종로구 서쪽 홍파동 행촌동 일대를 다룬 지도를 들고 이 동네를 걸으면 염상섭의 ‘삼대’에서 덕기가 병화의 홍파동 하숙집을 찾아가는 과정이 절로 떠오른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꼬불꼬불 뺑뺑 돌아야 양의 창자다. 서울서 이십여 년을 자랐건만 이런 동네에는 처음 와보았다.”

김 씨는 “유명인이 살던 곳,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만 주목하는 여행에서 벗어나 옛날이야기를 듣거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회상하듯 둘러보며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도 제작을 위해 3∼6개월 동안 수십 번 동네를 찾아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옛 문헌 속에 감춰진 동네 정보를 찾아냈다. 매회 500∼1000장 정도 인쇄하는 이 지도는 홈페이지(www.amateur-seoul.com)를 통해서만 장당 6000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입소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금세 알려졌다.

독특한 지도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지도에 나오는 곳을 함께 여행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만들어졌다. 20∼30여 명이 모여 홍난파 가옥, 일제강점기 서울특파원으로 활동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 등을 방문하거나 동네에서 시조창을 하는 명인으로부터 시조를 듣고 그 동네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다.

서울의 골목길을 탐방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투어가 끝나면 참가자 사이에서 특정 지역에 대한 감상과 함께 보존과 개발 방향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유 씨는 “아마추어 서울 지도를 통해 평범한 장소에서 ‘아,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이런 집에서 사셨다고 했었지’라며 생활의 역사나 추억을 되새기는 사람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서울의 평범한 곳을 특정 테마에 맞게 발굴해 계속 지도로 만들 계획이다. 여러 시각으로 새롭게 보는 지도들이 쌓여 누구나 마음에 드는 지도를 꺼내 서울 곳곳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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