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재취업의 꿈, 눈 낮추니 현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0일 03시 00분


[100세 시대… 더 오래 일하는 대한민국]<5>인생 2막에 도전하는 사람들

28일 오전 대구 동구 용계동 ㈜유니월드에서 여동구 이사(앞줄 가운데 남성)와 근로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회적기업인 유니월드에서는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는 장년근로자들도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다. 유니월드 제공
28일 오전 대구 동구 용계동 ㈜유니월드에서 여동구 이사(앞줄 가운데 남성)와 근로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회적기업인 유니월드에서는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는 장년근로자들도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다. 유니월드 제공
김모 씨(52)는 부산의 한 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쌍용에 취직했다. 10년 넘게 대기업 ‘상사맨’으로 지내던 그에게 첫 시련이 닥쳤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경영난에 빠지면서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얼마 뒤 김 씨는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업체인 ㈜하이디스에 입사했다. 그러나 회사가 외국기업에 인수된 뒤 구조조정이 실시되면서 첫 퇴직 후 10년 만인 지난해 다시 퇴사의 아픔을 겪었다.

김 씨처럼 특별한 기술 없이 해외영업 경력만 있는 50대 퇴직자는 재취업할 곳이 많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9월 한국무역협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찾았다. 1년 가까이 이력서를 냈다가 실패하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한때 창업을 고민했지만 20년 넘게 쌓은 경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올해 6월 한 중견 의료기업의 일본 주재원으로 채용됐다. 김 씨는 “종합상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마지막 열정을 쏟겠다”고 말했다.

‘평생직장’에서 밀려난 장년층에게 재취업은 더 큰 산으로 다가온다. ‘장년근로자는 업무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전한 데다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채용을 꺼리는 곳이 많기 때문. 장년근로자들이 과거 직장 수준의 처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별다른 기술이나 경력이 없는 근로자도 눈높이를 낮추면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노복덕 씨(61)도 4년 전 직장인의 ‘꿈’을 이뤘다. 그가 취업한 곳은 대구 동구 용계동 ㈜유니월드. 손수건 스카프 장갑 등 패션잡화를 만드는 서도산업㈜의 계열사로 2011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곳이다. 지난해 매출이 10억 원, 순이익도 3억 원에 이른다.

이 회사 근로자 40여 명 가운데 노 씨 등 장년층은 70%에 이른다. 이들은 하루 8시간씩 일하며 매달 150만 원 정도(수당 등 포함)의 급여를 받는다. 노 씨는 “자식들 모두 결혼시킨 뒤 뭐라도 하려는데 쉽지 않았다”며 “회사의 배려로 이 나이에 직장생활을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여동구 유니월드 이사(59)는 “장년근로자를 위해 구내식당 메뉴도 건강식 중심으로 바꾸고 학자금 지원용 사내복지기금도 설립했다”며 “정년(60세)이 있지만 건강만 허락하면 더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을 창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11년 사회적기업이 된 뉴시니어라이프는 실버패션 전문기업. ‘노을빛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장년층을 대상으로 의류 제조, 모델 매니지먼트, 이벤트 등을 연다. 이 회사는 30년 넘게 의상디자이너로 활동한 구하주 대표(67·여)가 설립했다. 그는 직접 가르친 50∼80대 나이의 시니어모델과 함께 1년에 10회 넘게 패션쇼도 진행했다. 구 대표는 “의상실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던 중 패션과 실버산업의 융합을 생각했다”며 “나를 포함해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100세 시대#재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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