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졸업생 10명 중 9명이 전공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갑니다. 학부 교수 30명 가운데 절반은 대학원생을 확보하지 못합니다. 정부가 소프트웨어 정책을 제대로 펴지 않고 20년 넘게 방치한 결과가 이겁니다. 정부 잘못이 큽니다.”
고건 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65·사진)가 소프트웨어 정책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30일 정부과천청사 미래부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공감 100℃ 토론회’ 강연 현장에서다.
이 토론회는 미래부가 더 나은 소프트웨어 정책을 세우기 위해 매주 한 번 점심시간에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질문하는 내부 행사다. 이날 처음 열린 토론회에서 강연한 고 전 교수는 미국 벨연구소 출신으로 30년 가까이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전공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왜 소프트웨어가 창조경제의 핵심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미국의 거대 통신업체 AT&T가 인터넷전화 서비스 기업인 스카이프에 밀리고, 스카이프는 다시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예를 들며 여러 차례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분야에서 코닥이 지고 사진공유 사이트 플리커가 뜬 것, 음악에서 디지털 음원 서비스가 레코드사들을 대체한 것, 책방이 사라지고 아마존이 장악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고 전 교수는 “벤츠의 회장마저 ‘자동차는 이제 가솔린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달린다’고 말할 정도”라고 전한 뒤 현대를 ‘소프트웨어 경쟁력 없이는 하드웨어 경쟁력마저 잃어버리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올해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은 세계 3위에서 5위로 떨어진 반면 미국은 4위에서 3위로 올랐다”며 “한국이 제조업 분야에서는 미국보다 낫다는 오랜 자부심이 무너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그 이유를 한국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고 전 교수는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비(非)소프트웨어 산업에는 외국기업 진출을 불허하고, 최고가를 매겨주는 등 혜택을 줬지만 소프트웨어만큼은 외국기업 진출을 우대하고, 최저가 정책을 썼다”며 “이에 따라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좋은 인력도, 기술도, 기업도 모두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국내에는 소프트웨어를 들여다보는 정책연구소 하나 없다”며 “통계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보니 정책 수립은 물론이고 1시간짜리 강의 준비하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고 전 교수는 “소프트웨어 산업은 후발기업을 죽이기 위한 말도 안 되는 가격 후려치기도 가능한 시장이라 무조건 선발기업에 유리하다”며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과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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