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폭탄주, 청소년 뇌 망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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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맛에 한잔 두잔… 알코올 의존증 증세까지

“처음엔 그저 달달한 맛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젠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생각나 도저히 못 끊을 것 같아요.”

고교 3학년 황모 군(18)이 ‘마성(魔性)의 음료수’에 손대기 시작한 건 6월 전국 모의고사를 보고 난 직후였다. 평소보다 성적이 크게 떨어져 낙심한 그에게 친구들은 정체 모를 액체를 마시라고 권했다. 동네 편의점에서 산 소주와 고카페인 에너지드링크를 잔뜩 섞은 ‘에너지폭탄주’였다.

처음엔 술이라는 생각에 마시기 망설였지만 한 번 입에 대기 시작한 뒤부터는 목이 마르면 어김없이 에너지폭탄주가 생각난다고 한다. 가끔씩은 잠이 오지 않을 정도의 의존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술과 술 또는 다른 음료수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 문화는 이미 청소년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12년도 주류 소비·섭취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15∼19세) 중 22.7%가 이미 폭탄주를 경험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폭탄주 역시 인기를 끌었다. 소주와 맥주 심지어 위스키, 보드카 같은 양주를 에너지드링크와 섞어 마신다는 비율은 10대가 1.1%, 20대가 9.6%였다.

그러나 이러한 에너지폭탄주는 청소년 뇌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0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헬스 콘퍼런스’에서 김대진 가톨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에너지폭탄주는 한 종류의 술만 마실 때보다 2∼3배가 넘는 알코올을 섭취하게 만든다. 알코올과 함께 대표적인 중독물질인 카페인까지 첨가되면 중독성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고 경고했다.

폭탄주 중에서도 에너지폭탄주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과도한 음주를 불러오고 중독성이 일반 폭탄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음료에 함유된 고농축 카페인은 뇌를 각성시킨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양의 에너지폭탄주를 마셔도 취하지 않거나 지치지 않는다고 느낀다. 하지만 몸은 이미 알코올에 잔뜩 취한 상태로 장기에 무리가 가고 손상이 시작된다.

알코올 의존증이 심하면 청소년의 뇌는 물리적으로 크기가 줄기도 한다. 뇌 조직은 기능에 장애가 오면 크기가 점차 줄어드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장기간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일으키는 탈수 현상으로 뇌 조직 전체의 수분도 감소한다. 쪼그라든 뇌는 감각, 인지, 운동 등 총체적인 뇌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김 교수는 “성장기 청소년의 뇌는 성인에 비해 알코올, 카페인 등 외부물질의 자극에 훨씬 민감하다. 그래서 성인에 비해 알코올성 기능 장애가 쉽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청소년 알코올 의존증은 성인에 비해 치유가 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임상적으로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뇌 기능 회복 속도가 2, 3배는 빠르다”며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지나치게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으려는 본인과 가족들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에너지 폭탄주#청소년#뇌#알코올 의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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