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초면 건너는 도로를 통과하기 위해 연간 40억 원이 낭비되는 현장이 있다. 2001년부터 12년간 단순 계산으로 480억 원이 길바닥에 버려진 셈이다. 자동차 수출 전진기지인 경기 평택항 배후 포승국가산업단지 내 자동차 야적장 얘기다. 도대체 무슨 우여곡절이 있는 걸까.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물류기업인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평택항과 붙은 포승공단 내 2필지 16만6586m²를 매입해 수출 차량을 잠시 보관하는 야적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중 한 필지는 부두와 고가도로로 연결돼 있어 선박이 도착하면 곧바로 선적하면 된다.
그런데 나머지 한 필지가 골칫거리였다. 부두와 왕복 4차로(폭 20m)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이 야적장에서 수출용 차량들을 부두로 옮기기 위해서는 도로를 건너야 한다. 그러나 갓 생산된 차량들은 도로를 건널 수 없다. 자동차관리법은 번호판이나 운행허가증이 없는 차량은 도로 주행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글로비스는 도로 건너 야적장 차량을 선적하기 위해 20km 떨어진 평택시 차량등록사업소에서 임시운행 허가증을 매번 받아야 한다. 각 차량마다 차대번호, 운행목적, 운행구간, 허가기간, 사용자, 사업자등록번호 등을 일일이 기입한 허가증을 받아 차 앞 유리에 부착하고, 대당 600원씩 하는 책임보험도 들어야 한다. 도로를 건너면 다시 이 허가증을 떼어내 차량등록사업소에 반납해야 한다. 하루에 받는 허가증은 500장에서 1500장. 발급에만 2시간여, 반납 시간까지 합치면 4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그만큼 차량 선적도 지연되기 일쑤다.
평택항은 지난해 선적한 차량이 82만 대(35%)로, 울산항(107만 대·46%)에 이어 국내 2위의 자동차 수출항이다. 현대글로비스 측은 “허가증 발급 및 반납으로 차량 선적이 연간 1200여 시간 지연되고 항운노조 추가수당 지급, 선박 체선료 등으로 연간 손실액이 4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현대글로비스는 2005년부터 이 도로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을 평택시에 여러 차례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특정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의혹의 눈초리가 무서워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전형적인 복지부동이었다. 길이 520m의 이 도로는 가장 분주한 출퇴근 시간에도 1시간에 차량 60여 대가 다니는 한적한 도로다. 이 도로는 한 필지였던 야적장 용지의 덩치가 너무 커서 매각이 안 되자 2001년에 용지를 분할하면서 억지로 생긴 것이다.
마침내 경기도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올해 5월부터 경기도는 여러 차례 현장답사와 포승공단 경영자협의회 협의, 관련 부처 자문 등을 통해 도로를 폐지해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혜 의혹을 우려해 감사원에 조언을 구해 ‘도로 폐지 불가피성이 인정되고, 비교이익 발생 부분을 사업지구 내로 환수할 경우 특혜로 볼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9월 “비난이 두려워 이런 불합리를 그냥 둘 수는 없다. 반드시 해결하라”며 실무진에게 적극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도로를 폐지하되 현대 글로비스의 비교이익 78억 원을 환수해 대체도로(길이 373m, 폭 15m)를 개설하고, 포승공단 내 70면 주차장 추가 확보, 근로자 복지회관, 출퇴근 통근버스 등을 지원하는 합의안이 마련됐다. 김 지사와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등은 31일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현대글로비스 부지 관통도로 산업시설용지 변경’에 관한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경기도는 이달 안에 지방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변경을 승인하고, 현대글로비스는 대체도로 공사를 끝내는 내년 상반기에 현 도로도 야적장에 편입시켜 사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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