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지역 소음상한 5dB 하향… 병원-도서관도 허용기준 강화
주거-학교지역과 똑같이 규제… 경찰, 시행령 고쳐 내년 시행
서울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는 날이면 바로 옆 중구 소공동 플라자호텔 프런트에 근무하는 A 씨(20대·여)는 한숨부터 나온다. 투숙객이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항의전화를 밤새 걸어오기 때문이다. 외국인 중에는 “이렇게 시끄러운 호텔일 줄 몰랐다, 속았으니 환불해 달라”고 화내는 사람도 있다. 무교동 코오롱빌딩에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 씨(51)도 “집회소음이 들릴 때마다 일에 집중을 못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경찰이 집회나 시위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강력히 규제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주거지역과 학교를 제외한 기타 지역의 소음 규제를 현행보다 강화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시행령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확정된다.
현재 주택가와 학교 주변의 소음 상한선은 주간 65dB(데시벨), 야간 60dB이다. 이는 주택, 학교 건물 외벽에서 1∼3.5m 떨어진 지점에서 측정했을 때의 수치 기준이다. 다른 지역은 주간 80dB, 야간 70dB이다. 80dB은 지하철 내 소음 크기와 같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타 지역 상한선이 주간 75dB, 야간 65dB로 각각 5dB씩 낮아진다. 하향 폭을 5dB로 정한 이유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소음진동관리법과 기준을 일치시키자면 10dB씩 낮춰야 하지만 집회의 자유를 급격히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어 폭을 완화했다”고 밝혔다.
또 “소리 분야 전문가들과 실험을 거친 결과 최소 4, 5dB 이상은 낮춰야 변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음진동관리법상 실외확성기 소음 상한선은 주간 70dB, 야간 60dB이다.
그동안 기타 지역으로 분류됐던 병원이나 도서관 주변은 주거 및 학교지역으로 분류된다. 소음이 환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 도서관의 정숙한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호를 한층 강화한 것.
경찰이 집회, 시위의 소음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민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야간 집회에 대해 수면 방해 등 1000여 건의 소음 관련 민원이 제기됐다.
경찰 개정안에 대해 집회가 잦은 지역 인근의 시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광화문의 한 금융사에서 일하는 김모 씨(27)는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밖에서 무슨 구호를 외치는지 다 알아들을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시청 인근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김모 씨(24·여)도 “뒤늦은 감이 있다”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집회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한 관계자는 “갈등을 더 유발할 수도 있는 규제”라고 비판했다. 어버이연합 관계자도 “정치인들 연설할 때는 안 지키면서 시민단체만 지키라고 하면 지켜지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소음 억제책이 되기 위해선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80dB의 소리를 10초 동안 듣는 것보다 70dB의 소리를 한 시간 동안 듣는 게 더 불쾌할 수 있다. 지속 시간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집회, 시위 현장에서 소음이 기준치를 넘으면 경찰은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어기면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5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소음 측정은 현재는 5분간 두 차례 측정해 평균을 내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한 차례만 측정하면 된다. 단순한 문화제나 공연은 법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도중에 정치 구호를 외치는 등 행사 성격이 변질된 경우에는 법이 적용된다.
미국은 낮 시간 기준으로 집회 소음은 65dB 이하까지만 허용된다. 65∼75dB은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되고 75dB 이상은 불법이다. 프랑스는 집회가 이틀 이상일 경우 개최 측이 ‘소음 영향평가 연구서’를 파리 경찰청에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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