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은행에 현금 10억 원을 들고 와 입금한 A 씨의 수상한 거래를 국세청에 통보했다. 국세청 직원들이 FIU 정보를 토대로 조사에 착수한 결과 뭉칫돈의 꼬리가 드러났다. 치과의사 B 씨가 A 씨에게서 집을 사들이면서 현금 10억 원으로 집값을 치른 것. 국세청은 이를 토대로 B 씨가 환자들과 현금으로 거래하며 거액의 소득을 탈루한 사실을 적발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하경제의 ‘큰손’들은 숨을 쉬기 위해 가끔 수면으로 올라오는 고래와 같다”며 “현금이 쌓이면 금융기관으로 고액의 현금이 흘러들어오는데, FIU 정보를 확보하면 이를 신속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5일 FIU 정보를 탈세 조사 및 체납 세금의 징수를 위해 제공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특정 금융 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개정안이 시행되는 14일부터 과세 당국이 FIU의 사전 통보가 없더라도 탈세가 의심스러운 2000만 원 이상 고액 현금 거래 정보를 요청해 세무조사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국세청은 먼저 현금 거래로 소득 탈루 가능성이 많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과 고액 자산가, 차명계좌에 악용되는 일용직 근로자와 미성년자와 같은 특정 집단의 고액 현금 거래 정보를 FIU 측에 요청할 계획이다.
현재는 FIU가 수상한 고액 현금 거래를 분석해 통보하거나 국세청과 관세청이 탈세를 막기 위한 조세 범칙 사건 조사에 들어갈 때 정보를 받을 수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세 및 관세 탈루 혐의가 의심되거나 세금을 체납한 사실이 있으면 2000만 원 이상의 ‘고액 현금거래(CTR)’ 정보를 FIU에 요청할 수 있다. 매출액이나 재산, 소득 규모에 비춰 현금 거래 빈도가 높거나 액수가 많아 탈세가 의심스러울 때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FIU가 정보를 제공할 경우 1년 이내에 본인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득이 낮은 일용직 근로자나 미성년자가 거액의 현금 거래를 했다면 탈세나 차명계좌를 의심할 만하다”며 “이들 외에도 변호사 의사 고액 자산가와 같은 집단의 고액 현금 거래 정보도 요청해 탈세를 추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FIU 정보를 활용해 2017년까지 모두 11조6000억 원의 세입 증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만 8000억 원의 세입 증대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법안 통과가 늦어져 기대만큼 세금을 더 걷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사생활 침해 및 권한 남용 우려로 국세청이 탈세 혐의를 제시하고 FIU가 이를 승인할 때만 정보를 제공하도록 제한한 것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세무학)는 “과세 당국의 FIU 정보 접근 확대는 납세자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며 “차명계좌 규제 강화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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