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우물속 순애보’ 지켜준 건 이웃 사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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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우물에 빠진 노부부… 김순례-이기순씨 달려가 구조신고
구급대 오기전에 할아버지 구해

68년간 해로한 노부부가 우물에 빠졌을 때 이들을 구해준 이웃 주민 김순례 씨(왼쪽)와 이기순 씨(오른쪽)가 6일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장흥군 제공
68년간 해로한 노부부가 우물에 빠졌을 때 이들을 구해준 이웃 주민 김순례 씨(왼쪽)와 이기순 씨(오른쪽)가 6일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장흥군 제공
2일 전남 장흥군 장동면 양곡마을에서 우물에 빠졌던 노부부를 살린 것은 68년을 함께 한 부부애였다. 사경을 헤매던 노부부를 구한 건 마을 주부들이었다. 이들이 평소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반 김순례 씨(62·여)는 마당에서 마늘을 까다 ‘우우’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인근 빈집 무밭에서 1시간여 전부터 물을 주고 있던 정매식 할아버지(91)와 부인 김수암 할머니(84)가 눈앞에서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양곡마을도 여느 농촌마을처럼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빈집이 서너 곳이 넘는다. 주민 59명 가운데 30, 40대 젊은층은 6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노인이다. 김 씨는 “노부부가 항상 서로를 보살피지만 워낙 나이가 많아 주민들이 늘 관심을 갖고 챙긴다”며 “빈집 텃밭에서 물을 주던 노부부가 보이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노부부가 위급한 상황에 놓인 것을 직감하고 1m 높이 돌담을 곧바로 뛰어 넘어갔다. 돌담을 돌아갈 여유를 없었다. 그는 돌담을 뛰어 넘어가면서 이웃 이기순 씨(38·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은 무밭 주변을 살피던 중 우물에서 나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우물 속을 살펴보니 정 할아버지는 우물 입구 돌 틈에 운동화가 걸려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김 할머니는 물에 빠져 우물 안쪽 벽에 튀어나온 돌에 의지해 얼굴만 물 밖에 내민 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이 씨는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은 땅 속으로 2.4m 깊이에 수심이 1.6m가량이었다. 땅 위로는 50cm가량의 사각형 시멘트벽이 둘러 있었다. 이 씨는 시멘트 담장 돌 틈에 다리를 끼워 몸을 지탱한 뒤 상체를 구부려 할아버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분 만에 정 할아버지를 먼저 구했다.

옆에 있던 김 씨는 119에 구조전화를 건 뒤 이 씨와 함께 할아버지를 끌어 올렸다. 할아버지의 체중은 50kg 정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잠시 후 119구조대가 도착해 우물 속에 있던 김 할머니까지 무사히 구조했다.

각종 농기계를 척척 다뤄 ‘똑순이’로 불리는 이 씨는 6남매를 키우며 벼와 표고버섯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우물이 깊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할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갑자기 힘을 써 온몸이 쑤시지만 노부부를 지켜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노부부가 평소 우리 애들을 돌봐주고 빨래도 걷어줄 정도로 사려 깊은 분”이라고 덧붙였다. 정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고마워했다.

이웃들 간의 따뜻한 관심과 정이 노부부의 순애보를 지켜준 것이다. 양곡마을 이장 정연승 씨(55)는 “두 주부가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장흥군은 노부부를 구한 두 주부에게 ‘숨은 의인상’을 주기로 했다고 6일 밝혔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우물#노부부#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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