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거주비율이 70%에 육박하는 대전시의 고민 중 하나는 ‘층간소음’이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현실에서 위층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좀처럼 견디기 힘들다.
고민에 빠진 대전시는 ‘층간소음 방지용 슬리퍼’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올 7월 1000켤레를 제작해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어온 가구에 보급했다. 이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이웃에 대한 ‘배려’를 행정 차원에서 촉진시키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다. 대전시는 층간소음 문제를 시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슬리퍼를 지속적으로 배포하는 등 이를 홍보할 계획이다.
10월 26일 대전 중구 으능정이(문화의 거리)에는 100여 개의 긴 식탁이 놓였다. 앞치마를 두른 아빠와 자녀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전시 주관의 아빠요리대회에 87개 팀이 참가한 것. 대회에 참가한 가족들의 소통 시간이었다. 이 역시 사회적 자본의 가치 중 하나인 ‘소통’을 위한 것이다.
윤모 씨(51·여·유성구 노은동)는 최근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사찰 음식’이 몸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하던 중 대전평생학습진흥원 시민대학에서 ‘산사의 자연을 담은 사찰음식과 건강식’이라는 강좌에 등록해 지금은 직접 사찰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
올해 7월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자리에 문을 연 대전시민대학은 시민들의 다양한 평생학습 욕구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11월 현재 시민대학에 개설된 강좌는 915개. 이 강좌들에 등록한 시민은 무려 1만2000여 명에 이른다. 강좌당 4∼12주 강의에 1만∼10만 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시민들의 평생학습 욕구에 맞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민대학은 사회 구성원 간 연대를 강화시켜 ‘사회적 자본’ 창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 덕분에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충남 홍성·예산)로 이전해 텅 비었던 구도심은 요즘 활기를 되찾았다.
연규문 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은 “평생학습은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고용 가능성도 높여줘 생활에너지 재충전의 기회가 되고 있다”며 “사회적 자본의 가치인 이해와 협력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미가 같거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또 하나의 연대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대전시는 ‘신뢰’ ‘배려’ ‘참여’ ‘소통’ ‘협력’ ‘나눔’을 핵심 가치로 시민대학을 비롯해 40여 개에 이르는 ‘사회적 자본 넓히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전대 곽현근 교수(행정학)는 “혈연 학연 같은 배타적 연고주의가 몸에 밴 현실 속에서 사회적 신뢰 회복은 쉽지 않은 과제”라며 “대전은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회적 자본 사업에 도전한 광역정부”라고 평가했다.
곽 교수는 사회적 자본 증진의 촉진자, 촉매자로서 대전시의 노력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시민사회 구성원 사이의 자발적, 수평적 결사체 조직과 참여를 장려하고 상호교류를 활성화한다는 것. 예를 들어 아파트 옥상에 텃밭을 가꾸도록 지원한 뒤 ‘회색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거나 근로자복지회관에 북 카페를 만들어 지식과 정보의 나눔 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하나는 투명하고 혁신적인 자치 행정을 통해 광역정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곽 교수는 “사회적 자본 확충은 지속가능한 시민의 행복을 위한 길이다. 이를 선도하는 대전시의 도전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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