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파이프에 뒤통수 맞아 뇌출혈… 당시 전남경찰청 김인원 일경 숨져
16일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 부친 “이런 비극 다시는 없어야…”
1996년 6월 14일 오후 5시 광주 조선대 정문 주변. 전남지방경찰청은 조선대 총학생회와 북한 김형직사범대의 자매 결연식과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전·의경들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후미를 지키던 기동9중대 의경 30여 명이 갑자기 튀어나온 광주전남총학생회연합(남총련) 대학생들에게 둘러싸였다. 의경들을 향해 사방에서 돌이 날아왔고 쇠파이프와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했다. 이들 의경 대부분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이 가운데 김인원 의경(당시 20세·일경·사진)은 왼쪽 발에 화염병을 맞은 뒤 이를 끄려는 순간 한 학생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뒤통수를 맞아 쓰러졌다.
김 의경은 헬멧을 쓰고 있었지만 쇠파이프는 보호막이 없는 헬멧 아래 국방색 천 가리개를 강타했다. 이어 학생들은 의식을 잃은 김 의경을 끌고 가서 집단 구타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박모 씨(37·당시 상경)는 1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의경들이 학생들의 집단 공격을 받는 상황이어서 신병인 김 의경이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건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 출신인 김 의경은 당시 여수대(현 전남대 여수캠퍼스) 해양생산과 1학년을 마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흰눈이 쏟아지던 1996년 1월 8일 의경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불과 5개월 만에 김 의경은 뇌출혈로 사경을 헤맸다. 사고 직후 조선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두 차례 뇌수술을 받는 등 총 9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뇌사 판정을 받은 1997년부터 광주보훈병원 62병동 11호실에 장기 입원하며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힘겹게 생명을 이어 갔다. 그사이 1998년 11월 16일 병상에 누운 채 수경으로 만기 전역했다.
아버지 김정재 씨(67)와 어머니 김복임 씨(64)는 15일 오전 4시 병원에서 둘째 아들 김 의경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의식불명 상태로 투병생활을 하던 김 의경은 37세를 일기로 패혈증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올해 5월 옥조근정훈장을 받은 것도, 경찰의 날인 10월 21일 명예경찰 순경으로 임용된 사실도 모른 채….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던 아버지 김 씨는 “둘째 아들의 몸이 오래 누워 있으면서 괴사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웠다. 하지만 17년 5개월 동안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아 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우리 아들 같은 불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 국민도 친북 세력에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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