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제철]<63>전남 고흥 유자

상큼한 향기… ‘비타민C 금메달’

전남 고흥군 풍양면 매곡리 박태화 씨의 농장에선 농약,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은 유기농 유자를 생 산한다. 유기농 유자는 일반 유자보다 비싼 kg당 3800원을 받는다. 박 씨는 “유자나무가 해안에서 자라는 것은 바닷물이 혹한의 온도로 떨어지는 것 을 막고 해풍이 과일 향을 진하게 만들기 때문”이라 고 말했다. 고흥군 제공

18일 전남 고흥군 풍양면 매곡리 3.3ha의 땅엔 높이 3m가량의 나무 1200여 그루가 늘어서 있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푸른 잎 사이로 어른 주먹만 한 황금색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50, 60대 주부 30명이 나뭇가지에 난 가시를 피해 가며 수확에 한창이었다. 비타민C가 레몬보다 세 배 많은 유자다.

이 농장은 24년 전 유자나무를 심었고 17년 전부터 농약,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업을 하고 있다. 전남도가 유자명인으로 선정한 농장주 박태화 씨(55)는 “유자는 찬 바람이 쏠쏠 부는 11월이 돼야 상큼한 신맛과 달달한 단맛을 제대로 낸다”며 “유자는 껍질이 두껍고 울퉁불퉁해야 품질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고흥의 유자 재배면적은 455ha로 전국 면적 1500ha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농가 1440곳에서 연간 생산하는 유자량은 5000t으로 전국 생산량의 39%다. 이들 중 900여 농가는 껍질을 주로 먹는 특성을 감안해 친환경 재배를 하고 있다. 유자나무는 연평균 기온이 13도 이상 되는 곳에서 자란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에는 서너 시간 만에 가지가 고사한다.

남해안에서 툭 튀어나온 전남 고흥반도는 연평균 기온이 13.7도이며 일조량도 전국 평균보다 241시간이 많다. 반도라는 특성 덕분에 삼면에서 해풍이 불어온다. 류인석 고흥군 농업기술센터소장은 “고흥유자는 온화한 기온에다 사방에서 부는 해풍 때문에 향기와 맛이 진하다”고 말했다.

유자는 중국 남부 윈난(雲南) 성 등이 원산지지만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재배된다. 장보고가 신라 문성왕 2년 중국 당나라 상인에게 얻어와 국내에 유입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 역사서인 세종실록(세종대왕 8년)에 전라도, 경상도에 유자를 많이 심게 했다고 적혀 있다.

유자나무는 심은 지 12년이 지나야 꽃이 피고 15년이 돼야 열매를 맺는다. 옛 선조들은 유자나무를 과일수보다 조경용으로 주로 키웠지만 ‘유자는 얼었어도 선비 손에 놀고 탱자는 잘생겨도 거지 손에 논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식용이 가능한 유자와 식용할 수 없는 탱자는 급이 다르게 취급됐다.

고흥에서 가장 오래된 유자나무는 수령 140년 정도다. 고흥에서 유자를 과실수로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탱자나무 뿌리에 유자나무 가지를 접목시키는 방법이 도입된 이후다. 탱자 뿌리를 접목시킨 유자나무는 추위에 강하고 심은 지 4∼5년 만에 열매를 맺는다.

유자는 신맛이 강해 알맹이를 잘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유자 껍질과 설탕을 일대일 비율로 섞어 유자청을 만든 뒤 차로 마시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요즘은 일본처럼 유자즙을 음식 소스용으로 만들거나 유자주스, 유자막걸리, 유자과자 등 가공식품이 나오고 있다. 송재철 에덴농원 사장은 “지난해 냉해로 올해 수확량이 평년보다 20% 정도 줄어 kg당 2100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고흥 두원농협 등 가공공장 3곳은 유자청을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수출하고 있다. 황금색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에게 유자차가 큰 인기를 끌면서 중국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김은식 전남도 농업기술원 연구관은 “유자는 비타민C가 많아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고 향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 항암 효과도 있으며 혈압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