죗값 치르는 아빠… 죄없는 세 딸은 오늘도 붕어빵만 먹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5일 03시 00분


[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上> “피해자는 더 할텐데…” 말 못하는 고통의 나날
딸들의 ‘멍에’

“매일 밤 엄마-아빠 보고싶어요” 살인죄로 복역 중인 황선우 씨의 세 딸 지현 지윤 지희(이상 가명) 양이 아빠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을 “아빠와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만 가끔 본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자주냐’고 묻자 “매일 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매일 밤 엄마-아빠 보고싶어요” 살인죄로 복역 중인 황선우 씨의 세 딸 지현 지윤 지희(이상 가명) 양이 아빠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을 “아빠와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만 가끔 본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자주냐’고 묻자 “매일 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평생 함께한 가족이 어느 날 강력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게 된다면 남은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흉악범죄는 철저히 단죄할 대상이지만 그 가족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가해자 가족도 범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법무부 교정본부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도움을 받아 10월 15일부터 1개월여간 살인 등 범죄로 징역 15년형∼사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흉악범 4명의 가족 9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정서적 불안을 겪으면서도 고통을 숨긴 채 살고 있었다. 》

#1. 지현이(가명·10·여)의 작은 과자 상자에는 엄선된 '보물' 3개가 들어있다. 선물 포장용 에어캡(일명 '뽁뽁이'), 지현 지윤(가명·9) 지희(가명·6) 세 자매와 아빠 황선우 씨(가명·38)가 원주교도소에서 같이 찍은 사진, 아빠 엄마의 웨딩사진이다. 웨딩사진 속 둘은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함께 웃고 있다. 4년 전 '그날' 이후 다시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2009년 1월 태국의 한 피자집. 지현이의 여섯 살 생일이었다. 아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엄마는 생일케이크를 자르면서도 울었다. 지현이는 어리둥절했다. 신발 사업을 하던 아빠가 지현이의 생일 며칠 전 캄보디아에서 동업자를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것도, 한국으로 돌아가 자수하기 전 지현이의 생일을 마지막으로 챙겨주기 위해 나흘 간 태국으로 도피했던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이다.

지현이의 엄마는 2011년 세 자매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 어른들은 "아빠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다"고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붕어빵 장사를 마치고 밤 10시에 돌아올 때까지 세 자매는 40㎡(약 12평) 남짓한 서울의 한 반지하방에서 할머니가 가져다 준 붕어빵으로 저녁을 때운다. 아빠 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걸 들킬까봐 친구도 데려오지 않기 때문에 TV를 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어린 자녀 셋을 둔 점과 자수한 점이 참작됐지만 황 씨는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할머니(64)는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너희들이 대학생이 될 때쯤 아빠가 돌아올 거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현이의 소원은 빨리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렵다. 언젠가 아버지 황 씨가 한 일을 알면 세 자매가 엇나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20일 아빠 엄마의 웨딩사진을 보던 막내 지희가 불쑥 기자에게 "젖니를 스스로 뺐다"며 앞니가 비어있는 입을 보여줬다. 옆에 있던 지현이는 막내에게 핀잔을 놓았다. "그거 혼자 뺀 게 뭐가 자랑이야? 아빠 엄마 없는 거 부끄러운 거야"라고.

#2. 이정화 씨(가명·28·여)는 경북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을 맡고 있다. 3년 전 사장의 배려로 어렵게 구한 일자리다. 면접을 봤던 이전 회사들은 이력서 '가족관계' 칸에 아버지의 이름이 비어있는 이유를 꼬치꼬치 물었다. 사실대로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계시다"고 답하면 면접은 어색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어느 곳도 "살인범의 딸은 뽑을 수 없다"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1999년 3월 이후 세상과 정화 씨 사이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이 면접위원 앞에도 세워졌다.

당시 정화 씨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경찰이 집으로 와 정화 씨와 초등학생인 남동생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갔다. 경찰로부터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유전자(DNA)와 대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밖에 듣지 못했다. '현장'이 아버지 이상민 씨(가명·57)가 사귀고 있던 40대 여성을 살해한 승합차 안이었다는 사실을 며칠 뒤 언론에서 알게 됐다.
사건 발생 1년 전인 1998년 어머니가 이미 가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화 씨와 남동생은 각각 친척들에게 맡겨져 사춘기를 보냈다. 주변 시선을 피해 전학 간 학교에서는 적응을 하지 못했다. 비행청소년들과 만나며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잦아졌다. '평범'한 친구들과 더 이상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달 1일 대구의 단칸방에서 기자와 만난 정화 씨는 "아는 수녀님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가족 아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 한다"고 말했다.

대구=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흉악범 가족#가해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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