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꿈틀 신나는 진로’가 여섯 번째로 탐색한 진로는 항공정비 분야다. 항공정비 분야는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 국제화에 따른 국내외 여행객 및 각종 국제행사의 증가, 항공화물수송량 증대 등의 영향으로 전망이 밝은 진로로 꼽힌다.
전북 강호항공고 3학년 지동규 군은 ‘꿈틀꿈틀 신나는 진로’의 도움으로 항공정비 분야 명장인 이치우 광주대 국방기술학부 항공정비학과 교수를 최근 광주대에서 만났다.
이치우 명장은 1978년 공군 군무원으로 항공정비를 시작한 뒤 공군 군수사령부 한국항공기술연구소를 거쳐 35년째 항공기술 개발과 품질인증 분야의 외길을 걸어왔다. 2006년 항공정비 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이 명장은 현재 광주대 국방기술학부에서 지상 및 공중무기 정비 일반, 항공기체·기관·계통 정비 등을 가르치고 있다. 밤새워 관련서적 들여다볼 호기심 있나요?
“1978년에 공군 군무원으로 일을 시작했을 땐 항공기를 옮기고 기름을 닦는 등 시키는 일만 했습니다. 항공기 엔진에 관련된 서적들은 다 영어로 돼 있고 한국어판은 오역도 많아 실질적인 기술을 배울 여력이 없었죠. 항공기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없었다면 계속 일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요.”(이 명장)
이 명장은 항공정비 분야 진로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흥미’를 꼽았다. 많은 학생이 ‘항공사에서 일하면 연봉을 많이 받을 것 같다’ 또는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항공정비 분야 진로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런 ‘환상’을 갖고 진로를 결정하면 비행원리, 기체, 기관, 장비 등의 광범위한 자격공부를 하다가 지치기 일쑤. 어려운 용어를 공부하다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중도 포기하는 학생도 많다. 이 명장은 “항공정비 분야는 자격증 취득이 반드시 필요한 진로 분야”라며 “항공기술 분야 책을 밤새워 들여다볼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공정비 자격증 분야는 기관, 기체, 장비, 전자 등으로 세분화돼있다. 자격증 취득과정은 필기와 실기, 구술시험 등으로 체계화돼있고 시험의 난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가장 기본적인 자격인 항공정비 기능사만 하더라도 필기시험 합격률이 50% 내외일 정도. 이 명장은 “고교생 때는 응시자격의 제한이 없는 항공정비 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고 전문학교 또는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항공정비사와 항공 산업기사 자격증 등을 단계적으로 취득하라”고 조언했다. 설계, 제작, 정비 모두 알아야
“항공기를 다루는 직업은 크게 설계, 제작, 정비 등 세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명장님이 보시기에 어떤 분야가 가장 유망할까요?”(지 군)
지 군의 질문에 이 명장은 “가장 기본적인 설계를 알아야 제작과 정비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면서 “설계, 제작, 정비의 과정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명장은 항공기의 변천과정을 예로 들었다. “과거의 항공기는 각 파트들을 너트와 볼트로 연결시키도록 설계가 돼있었죠. 하지만 항공기의 속도가 더 빨라짐에 따라 연결 부분에 응력(외부의 힘이 작용할 때 내부에 생기는 저항력)이 생겨 기존 설계방식에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파트별 연결 방식이 본딩(초강력 접착 소재를 활용해 붙임)으로 변화했지요. 지금은 항공기가 초음속을 돌파함에 따라 블록으로 조립하는 방식으로 또 한 번 변화했습니다.”(이 명장)
이처럼 항공산업의 발전은 정비 과정에서 발견된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설계를 하고 이를 제작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가능했다는 것. 정비사가 설계, 제작 등 항공기의 기본적인 역학에 두루 능통해야 하는 이유다. 기술이 더 발전한 21세기에는 항공역학 관련 이론도 체계적으로 학습해야 실력 있는 항공정비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 명장은 “항공 분야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전문학교, 대학 등이 많이 생겼다”며 “학교를 선택할 때는 그 학교가 항공역학과 관련된 이론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현장이 곧 학교… 친화력 있어야
항공정비 분야에서 명장 수준의 전문가로 성장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이 군의 궁금증에 이 명장은 의외로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친화력’과 ‘인성’을 강조했다. 항공산업의 특성상 항공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큰 조직에 소속돼 많은 사람과 함께 업무를 수행한다.
이 명장은 “현장에서는 동료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다. 친화력을 발휘해 항상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비사는 탐구심을 갖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TO(Technical Order)라 불리는 항공기 정비 매뉴얼만 한 기종에 78개에 이릅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장에 나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이 명장)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김재성 인턴기자
▼ “전망 밝지만 인프라·자격시험 제도는 개선해야” ▼ 전문가가 말하는 ‘항공정비’ 분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정비 분야 전문가들은 이 분야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볼까.
국내에서 손꼽는 항공정비 분야 전문가인 이봉식 대한항공 원동기정비공장 부장(54), 이치우 광주대 국방기술학부 초빙교수(62), 이형진 공군교육사 군수1학교 기체정비교관(54), 정경남 공군 3훈련비행단 기관정비반장(50), 정윤주 써니엔지니어링 실장(64)에게 비전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항공정비 분야는 세계여행 수요가 증가하고 국가 간 항공물류 수송량도 늘고 있어 직업적 전망이 밝다”고 분석했다. 특히 항공우주산업과 관련된 협력업체들이 많이 생기면서 정비인력의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정경남 명장은 “지난 몇 년간 저가항공사가 늘어나면서 항공산업이 양적으로 성장했다”며 “차세대전투기(FX) 사업 등 군 항공기 교체시기가 겹치는 것도 항공산업의 전망을 밝게 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정윤주 실장은 “항공분야 관련지식, 외국어 등을 끊임없이 공부해 전문성을 갖춘다면 진로 전망은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많은 교육기관에서 항공관련학과를 운영 중일만큼 성장하는 분야. 하지만 교육을 받고 나오는 모든 인력이 취업할 수는 없는 것도 현실이다. 청소년들이 항공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이형진 교관은 “교육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는 공간은 제한적”이라면서 “국가차원에서 항공산업 육성을 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치우 명장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는 배우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활용하는 기술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자격증 취득 위주의 교육을 탈피해 실무적인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시험제도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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