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유학생 주링쯔(朱凌子·22·여) 씨는 중국인 친구들과 7월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취득하는 데 걸린 3주 동안 운전면허학원에 간 건 딱 5번. 한 번 갈 때마다 2∼3시간씩 수업을 받았다. 결과는 한 번에 합격. 그는 “한국에서 면허를 따는 게 더 쉽고 싸서 주위의 중국 친구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면허를 따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온 교환학생 주디(朱迪·21·여) 씨도 5월 한국에서 면허를 땄다. 그는 “한국의 운전면허시험이 중국보다 시험과목 수도 적고 합격 기준도 낮아서 훨씬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면허를 신규 취득한 중국인은 2만3242명. 전년보다 57% 늘어난 수치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운전면허학원도 많다. 취재팀이 13일 방문한 서울 구로구 A운전면허학원은 건물 곳곳에 한국어와 중국어가 병기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경기 남양주시 B학원은 아예 중국어로 된 교재까지 구비했다. B학원 관계자는 “최근 중국인 수강생이 많이 늘어 한 반에 약 10%는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면허취득시험은 4단계로 단계별로 90점이 넘어야 합격할 수 있다. 도로주행시험과 필기시험(1종 기준) 합격기준 점수가 70점인 한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면허취득을 위한 의무교육시간도 79시간(소형차 기준)으로 모든 단계를 탈락하지 않고 한 번에 통과해도 최소 3개월이 걸린다. 한국은 2011년 6월 운전면허 간소화가 실시된 뒤 현재 의무교육 13시간만 받으면 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한국 면허를 취득한 중국인은 자국으로 돌아가 필기시험만 통과하면 중국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쉽고 빠르게 면허를 딸 수 있는 방법으로 한국 면허를 선호하는 것.
교통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운전면허시험 취득요건을 강화하는 가운데 유독 우리나라만 거꾸로 이를 완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숙한 운전자를 양산해 교통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운전면허 간소화가 시작된 뒤 1년간(2011년 6월 10일∼2012년 6월 9일) 초보 운전자(취득연수 1년 미만)가 일으킨 교통사고 건수는 그 이전 1년(2010년 6월 10일∼2011년 6월 9일)보다 23% 증가했다.
면허를 취득하고도 실제 운전을 못해 도로연수를 다시 받는 사례도 많다. 지난해 10월 면허를 땄지만 한 번도 도로에 나가본 적이 없는 대학생 김은강 씨(22·여)는 “따로 도로연수를 받지 않고서는 운전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도로주행시험을 볼 때 끼어들기를 하다가 자칫 사고를 낼 뻔해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을 해서 오히려 당황했다”며 “면허시험도 허술하게 치러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2월 한국 면허를 딴 중국 유학생 왕모 씨(23·여)도 “가끔 운전을 하지만 아직도 도로에 나가기 무섭다”며 “충분히 교육을 받았으면 덜 어려울 텐데 도로주행 교육 6시간은 너무 짧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간소화 이전처럼 기능시험을 복잡하게 하는 대신 실제 운전에 도움이 되는 도로주행시험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도로주행 상황을 가정한 운전면허시험을 치른다. 독일은 도로주행에 시외도로와 고속도로 주행코스도 포함한다. △시간당 최소 차량 100대 이상인 도로 주행 △대중교통 정거장 지나가기 △커브길·조망이 어려운 곳 주행 등 평가과제도 세분했다. 명묘희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원은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 등 위험한 운전 상황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다양한 상황에서의 운전능력을 평가하는 등 실질적인 운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시험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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