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한 명문대의 ‘사이버 강의실’에 이런 내용의 공지가 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전국 대학가로 확산되던 상황에서 교수 한 명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대자보를 붙이고 인증샷을 찍어 제출하면 기말고사 과제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19일 본보가 확인한 결과 이 공지는 문화인류학 전공선택 과목(3·4학년 대상)인 ‘현대문화인류학이론’을 맡고 있는 김모 교수(40)가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해당 대학 국학연구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수업의 성적은 중간, 기말 리포트가 30%씩 반영되고, 별도의 시험은 없다. 원래 기말 리포트는 ‘더 나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2페이지 분량의 쪽글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대학가에 퍼지기 시작했다. 정해진 주제로 쪽글을 쓰는 것 외에도 대자보를 작성해 인증사진을 올리는 방식 역시 리포트를 대체할 만한 과제라고 생각해 시도한 것이며 학생들이 먼저 과제물 대체방식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평가가 한 학기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데 타당한 방식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한기 성적은 기말 과제뿐 아니라 토론과 여러 차례에 걸친 평가가 합산돼 이뤄진다. 교수의 주체적인 판단으로 대자보 인증샷 제출도 평가방법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대학가에 좌우 대립 논란을 불러올 정도로 논쟁거리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작성을 기말고사 과제물로 제시한 교수의 행동에 대해서는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수업을 듣고 있는 A 씨는 “과제 평가방법이 참신하다고 생각하고, 참여할 기회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교수의 공지문을 게시한 한 학생의 페이스북에는 과제를 낸 김 교수에 대한 칭찬의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B 씨는 “그동안 우리 학과의 다른 강의들에서도 ‘운동권 학생 인터뷰하기’ ‘시위 참가해 소감문 쓰기’ 등의 과제물이 주어진 적이 있었다. 다소 진보적인 성향의 교수님이 낸 과제인 경우, 반대의 생각을 쓰기란 어렵다”면서 “대자보는 자신의 생각을 자발적으로 써야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평가된다고 하면 누가 교수님과 반대되는 생각을 적어 인증을 올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학과의 한 학생은 “특정 이념적 지향성이 분명한 행위를 교수가 학점을 미끼로 사실상 독려한 것”이라며 “만약 보수 성향의 교수가 일베(강경우파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글을 올리면 학점을 주겠다고 했다면 진보 쪽에선 비판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가란 교육과정에서 다룬 내용에 근거해 성취도를 측정하는 것인데, 이 대자보 인증이 평가방식으로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수업의 목표가 사회문화 현상을 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란 점에서 타당성 있다고 본다”며 “쪽글을 내거나 대자보 인증을 하거나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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