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중턱 암자인 산방굴사(국가지정 명승 제77호) 앞에서 자라는 노송(老松)이 지역 주민들과 이별 의식을 치른다. 노송은 산방굴사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치렁치렁한 가지와 함께 고고한 이미지를 보여 주는 소나무다. 이 소나무가 없었다면 제주의 빼어난 경치를 뜻하는 ‘영주십경’의 하나인 산방굴사가 십경의 반열에 오르기 힘들었다. 이 소나무가 재선충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최근 고사 판정을 받았다.
사계리 지역 주민들은 8월부터 소나무 잎이 푸름을 잃어 누렇게 변하자 민간요법을 동원하며 살리려고 애썼지만 결국 허사였다. 지역 주민들은 회의를 열어 논의를 거듭한 끝에 24일 오전 10시 소나무 앞에서 고사를 지내는 이별 의식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고사는 산방사 주지 벽공 스님이 맡아 불교의식으로 치러진다. 산방굴사 소나무는 조선시대 숙종 28년(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제주도를 순회하며 화공 김남길에게 그리도록 한 탐라순력도의 그림 가운데 ‘산방배작’이라는 작품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소나무가 현재의 소나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역 주민들은 그렇게 믿으며 수령을 500∼6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베어 낸 고사목은 조각가에게 맡겨 산방굴사 전설 속의 여인 ‘산방덕’으로 되살아날 예정이다. 산방덕은 고을 사또의 횡포로 남편과 헤어지면서 산방굴로 몸을 피한 뒤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바위로 변했고, 산방굴사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그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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