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은 융복합 연구… ‘글로벌 지스트’ 도약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4일 03시 00분


美 캘리포니아공대와 1대1 공동연구 1년 결실

#1. 광주과학기술원(GIST·지스트) 정의헌 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칼텍) 창웨이 양 교수는 지난해 10월 공동연구팀을 꾸렸다. 뇌 조직에 레이저 빔을 투과시키는 장치를 개발하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서였다. 그동안 뇌중풍이나 파킨슨병 등 뇌 조직이 손상되거나 기능이 떨어질 경우 뇌 부위에 전기적 자극을 주는 치료법이 있었지만 부작용 때문에 치료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연구팀은 절개나 수술이 필요 없는 비침습적 방법으로 뇌 조직을 자극할 수 있는 치료법에 주목했다. 이 분야 권위자인 양 교수는 자체 개발한 ‘디지털 광학 위상 공액’이란 기술로 2.5mm까지 레이저 빔을 투과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정 교수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살아 있는 생체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정 교수는 “칼텍은 디지털 광학 기술을 전수하고 지스트는 생체 이미징 기술을 제공해 공동연구 시너지 효과가 크다”며 “머지않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연구 성과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2. 각막은 눈에서 초점을 맞추는 역할을 수행하는 가장 외곽에 있는 조직이다. 세계적으로 1000만 명 이상이 각막 질환이나 손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각막 손상으로 시력을 잃을 경우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기증된 각막을 이식하는 게 있지만 기증 각막 수가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지스트 태기융 교수와 칼텍의 줄리아 콘필드 교수는 손상되거나 감염된 각막의 재생을 촉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를 2년째 수행하고 있다. 칼텍은 세포가 일정하게 배열된 구조로 자랄 수 있도록 유도하는 나노구조체 박막을 만들었다. 지스트는 투명성을 유지하면서 줄기세포 증식 및 분화를 촉진할 수 있는 생분해성 물질인 주사형 수화젤을 개발 중이다. 태 교수는 “개발된 기술을 체외 각막 손상 모델에 적용해 효과가 검증되면 각막 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경 뛰어넘는 기술 융복합 연구

칼텍은 1891년 설립 이래 노벨상 수상자 31명(32회 수상)을 배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이공계 대학. 교수 300여 명, 학생 22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대학이지만 빛나는 연구 성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은 지스트는 지난해 10월 칼텍과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협약을 맺었다. 칼텍의 노하우를 배워 10년 후 세계 30위권의 ‘작지만 강한 이공계 명문대’로 도약하겠다는 게 지스트의 목표다.

공동 연구 프로젝트는 두 대학의 교수가 일대일로 짝을 이뤄 하나의 연구 그룹을 구성하고 공동 연구 과제를 3년간 수행한 뒤 그 결과를 발표한다. 신소재·생명·의료 등 분야에서 4명씩 총 8명의 양측 교수들이 과제를 선정해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동 연구 과제에 선정되기 위해 칼텍에서만 18명의 교수가 응모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유기화합물 실용화의 길을 연 공로로 200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로버트 그럽스 칼텍 교수도 공동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올해는 2개 팀 4명의 교수가 추가로 선정돼 연구에 나선다.

지스트와 칼텍은 올해 9월 지스트 오룡관에서 두 대학의 공동연구 진행 상황과 성과를 발표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올해 공동연구 신규 연구과제에 선정된 칼텍의 제임스 히스 교수가 자신의 연구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스트 제공
지스트와 칼텍은 올해 9월 지스트 오룡관에서 두 대학의 공동연구 진행 상황과 성과를 발표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올해 공동연구 신규 연구과제에 선정된 칼텍의 제임스 히스 교수가 자신의 연구 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스트 제공
두 대학의 공동 연구는 지난 5년 동안의 교류와 신뢰가 바탕이 됐다. 2009년 지스트 교수단의 첫 칼텍 방문 이후 초청 강연과 교과과정 자문 협력 등 교류가 잦아졌다. 2011년부터는 여름방학 때 상대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 10주간 현지 지도교수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부생 하계 연구 지원 제도(SURF)’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칼텍과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은 지스트와 싱가포르국립대, 홍콩대, 인도공대, 아이슬란드국립대 등 세계에서 5곳뿐이다. 김영준 지스트 총장은 “자부심 강한 칼텍이 한국 대학과 실질적인 연구 교류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칼텍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우리의 과학기술 연구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공동 연구 결실에 학계 관심 집중

공동 연구의 성과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소화기관인 장(臟)의 면역 과민 질환에는 주로 스테로이드나 면역 억제제가 쓰이는데 장기간 투여할 때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치료법은 전체 면역 체계 기능을 유지하면서 병을 유발하는 면역 과민 세포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다. 지스트 임신혁 교수와 칼텍의 사키스 마즈마니안 교수는 머리를 맞대고 부작용이 거의 없는 자가면역질환 맞춤형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장 내의 많은 미생물 가운데 특별히 과민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기능을 가진 유익세균(프로바이오틱스)을 선별하고 이를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활용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희귀 난치병 질환인 자가면역성 중증 근무력증을 선택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유산균 치료제 개발에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

칼텍과의 공동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정성호 지스트 연구처장은 “국경을 넘은 두 대학의 융복합 연구 결과에 국내외 학계의 관심이 높다”며 “학생 교류와 공동 연구에 이어 기술 이전, 창업, 기금 모금 등으로 협력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융복합연구#지스트#캘리포니아공대#공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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