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염곡동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에서는 2회 이상 음주운전자 대상 특별교통안전교육이 열린다. 8시간 동안 ‘음주운전 교통 법규’와 같은 강의와 음주운전 재발의 원인을 알아보고 자기 진단을 해 보는 집단상담이 이뤄진다. 11일 집단상담을 진행한 고윤경 도로교통공단 상담교수(37)가 교육대상자들에게 여기 오게 된 이유를 물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남성 14명이 앉아 있었지만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거나 눈을 감은 채였다. 고 교수는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교육생의 마음을 열기 위해 ‘운전 분노(화가 나서 운전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틀어줬다.
중부고속도로 음성휴게소 인근. 갤로퍼와 쏘나타 차량 두 대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서로 부딪칠 것처럼 신경전을 벌이더니 서로 앞지르기 위해 속력을 높였다. 이때 갤로퍼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갓길 가드레일에 충돌했다. 충격으로 튕겨 나와 다시 쏘나타 차량을 쳤다. 동영상에 집중하던 교육생들 사이에서 “아…” 하는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 교수가 화면을 정지시켰다.
“평소 운전습관을 돌아봅시다. 항상 화가 난 상태로 운전하는 건 아니었을까요?”
이번에는 같은 사고를 갤로퍼 차량 안 블랙박스 영상으로 보여줬다. 차에는 아내와 두 아이가 타고 있었다. 남편의 과격한 운전을 말리는 “그만 해”라는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순간 “쾅” 하는 충돌음이 들렸다. 남편이 다급하게 “괜찮으냐”고 묻는 소리가 났다. 뒷좌석에서는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 도대체 왜 음주운전을 하는 것일까
사고 영상을 보고 난 뒤 숙연해진 강의실. 이때 고 교수가 어떻게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는지 다시 묻자 하나, 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 명백한데도 음주운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 시동을 켜고 기다리는데 경찰이 다가와 운전 의도가 있다고 음주 측정을 했다.”(40대 A 씨)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차를 빼 달라고 해서 3m가량 움직였다. 누군가 신고했는지 경찰이 왔다. 벌점이 많아 면허가 취소됐다.”(30대 B 씨)
도로교통공단이 습관성 음주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이들은 ‘대리기사가 오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는 등 스스로 음주운전을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소하게 저지른 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높다. ‘남들도 다 하는데 재수가 없어 걸렸다’며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습성도 있다. 이날 교육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덜 느끼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감도 낮다. 특히 음주운전이 심각한 범죄라는 죄의식도 낮았다.
“기분이 좋으면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는다. 딸만 셋인데 첫째 딸이 결혼하는 날 음주운전을 했다. 하객이 몰려오고 축하를 해주고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50대 C 씨)
“다음 날 차 없이 출근하기 귀찮아서. 그냥 걸렸다.”(20대 D 씨)
이 밖에 △난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 △마신 술의 양이 적다 △나는 앞으로도 교통사고가 안 난다 등 비합리적인 신념도 음주운전을 부추긴다.
보통 음주운전 단속은 음주운전이라는 행동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교육생들의 항변에서 보듯이 ‘습관성 음주운전’이라는 행동은 심리적, 인지적 취약성에서 비롯된다. 월 5회 이상 술을 마시고, 한 번에 5잔 이상 마시는 등 알코올의존증 성향도 보인다.
○ “음주운전은 패가망신… 결단력 길러라”
음주운전은 고의적이고, 반복적인 범죄행위다. 단순한 교통 법규 위반과는 달리 “소주 한 잔인데…”라며 운전대를 잡기 시작하면 점점 과감해진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 횟수(적발 수치)는 2008년 43만4148건에서 2012년 24만6283건으로 43%나 줄었다. 반면 습관성 음주운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회 이상 단속된 음주운전자의 비중은 같은 기간 25%에서 25.9%로, 3회 이상 단속된 음주운전자의 비중은 11.3%에서 15.2%로 증가했다. 고 교수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예방대책을 세우고 실천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집단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모 씨(32)가 그런 사례다. 이 씨는 1월 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소주 두 잔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했다. 역시 술에 취해 운전을 하던 맞은편 차가 중앙선을 넘어와 정면충돌했다. ‘바로 앞이니까…’라며 운전대를 잡은 결과는 8개월간의 병원생활. 왼쪽 팔뼈가 으스러져 이식 수술을 4번 받았다. 병원비는 고스란히 자비로 부담했다. 회사는 휴직 상태다. 대출 이자가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 9월 파산신청을 했다. 이 씨는 퇴원하자마자 이번 교육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한 번도 사고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사고 이후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간호하는 가족들을 보는 것이었어요. 음주운전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면 얼마나 몹쓸 짓입니까. 다시는 차를 가지고 술자리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단상담이 마무리될 무렵, 교육생들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을 흰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이 씨는 ‘음주운전은 패가망신, 결단력을 길러라!’라고 힘주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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