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어선 트럭들이 차로 하나를 차지했다. 자전거도로도 사라졌다. 버스정류장 안내판은 트럭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불법 주정차 집중 단속 구역’ 표지판 바로 앞이었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남문과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 사이 왕복 6차로 도로. 가락시장 역부터 수서역을 향하는 이 도로는 20년 동안 민원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트럭이 밤새 불법 주차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가락시장에서 물품을 도로에 주차된 트럭까지 옮겨 실어주는 길이 2m의 전동화물차가 시장 안팎을 들락날락하며 도로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동화물차는 전동차에 적재함을 연결해 개조한 것으로 원래 도로 주행이 금지돼 있다. 본보에 ‘분통 터지는 도로’를 제보한 한형구 씨(60)는 “이 도로는 밤마다 가락시장 주차장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가락시장 앞 남문과 서문 도로를 세 차례 방문했다. 먼저 한양대 대학생 기자단이 물동량이 크게 늘어나는 추석을 앞둔 9월 15, 16일 현장 취재에 나섰다. 이어 23일 오후 다시 한 번 현장을 찾았다.
이날 오후 11시가 넘어서자 가락시장 남문 앞 도로가 붐비기 시작했다. 1∼5t 트럭 30여 대, 승용차 10여 대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전동차와 오토바이도 그 사이를 쉼 없이 움직였다. 인도는 하역 물품이 차지해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주차된 트럭 옆 도로로 걸었더니 차가 ‘쌩’ 하고 옆을 지나갔다.
가락시장 인근은 교통사고가 잦은 곳 가운데 하나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0∼2012년 이곳에서 교통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220명이 다쳤다. 지난달 11일에도 승용차가 짐을 싣던 전동차와 화물차를 잇달아 들이받아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이후 구청·경찰은 주정차 단속을 강화했고 서울시농수산물공사는 교통관리 요원을 8명으로 늘렸다. 그러나 단속을 피해 불법 주차가 횡행했고 전동차는 도로를 달렸다. 아파트 단지에서 떨어져 단속이 덜한 가락시장 서문 쪽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물품을 싣고 내리는 작업이 시장 밖에서 이뤄지는 것은 만성적인 주차 공간 부족 때문. 가락시장의 하루 출입 차량은 4만2000여 대에 이르지만 주차 공간은 10분의 1 수준이다. 시장이 소화할 수 있는 용량을 넘긴 지 오래다. 매일 가락시장을 찾는다는 송모 씨(32)는 “시장 안 도로가 꽉 막혀 들어갔다 나오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 주차 위반 과태료를 물더라도 배달 시간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생계가 걸린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 주차 단속이 느슨했다. 가락시장 남문 앞 도로에는 폐쇄회로(CC)TV가 4대 설치돼 있지만 단속 효과는 낮았다. 트럭에 운전자가 줄곧 앉아 있다가 재빨리 짐을 싣고 떠나 버리므로 CCTV로는 제대로 단속이 되지 않는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전동차를 버젓이 도로 밖으로 끌고 나오는 시장 상인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락시장 전동차는 1500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이 끝날 때까지 주차장을 대폭 늘리기는 어렵다는 것. 이에 대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우선 화물차 50여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파구는 내년부터 불법 U턴을 막기 위한 중앙 분리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이 기사 취재에는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김성욱 김은강 박하영 백가연 이예림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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