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작년 10월부터 45명 대상 운영
가족도 동참… “인식변화가 관건”
광주에서 소방관이 재난, 재해 등 구조작업을 하면서 얻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치유하는 작업이 처음 진행되고 있다.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큰 걸림돌 중 하나는 편견이었다.
광주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이하 센터)는 지난해 10월 2일부터 광주 광산소방서 하남119안전센터·구조대 소방관 45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소방관은 2011년 1월 22일 동료 2명이 아파트 14층 베란다에서 고드름 제거작업을 하다 고가 사다리차 승강기와 함께 30여 m 아래 바닥에 떨어져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을 때 함께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 사고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선실(45) 서연정 상담원(39)이 처음 소방관 45명을 만났을 때 대부분은 “내가 ‘또라이’요? 조직에서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기 싫소!”라며 상담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소방관들은 “트라우마 조사는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에 불과하다. 우울증 등 기록이 남으면 승진에 차질이 생긴다. 사기를 높이려면 차라리 수당을 더 주는 것이 낫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상담원들은 매일 소방관들을 만나 신뢰를 쌓았다. 3교대 근무 특성상 낮과 밤이 따로 없었다. 최태산 동신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를 강사로 초빙해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해 11, 12월 간이조사를 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가 정말 힘들고 긴 싸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간이조사에 응한 소방관 45명 중 14명이 조사를 회피, 외면한 것으로 추정됐다. 김 상담원은 “제복을 입은 소방관과 경찰, 군인 조직은 서열 위주의 남성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트라우마 자체를 인정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센터는 치유에 앞서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소방관들에게 “사람은 참혹한 현장이나 상황을 경험하면 누구나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결코 약해서가 아니다”고 설명한다. 치유 프로그램에 가족을 동반시키고 있다. A 소방관의 부인은 “다른 사람보다 남편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치유 프로그램을 들어보니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힘든 사건을 수습한 뒤 집에 와서는 왜 TV만 보고 있는지, 성격이 왜 더 급해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 상담원은 “구조활동을 하다 참혹한 상황을 경험하면 누구나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변화가 중요하다. 인식변화 없이는 트라우마 조사와 치유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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