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두번 울리는 ‘의료진 SNS’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9일 03시 00분


진료기록 올리고 “좀비폭탄… 발기부전이라니 웃겨” 비아냥

일부 의료종사자의 무분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상정보가 적힌 환자의 진료기록 사진(왼쪽)이나 신생아를 품에 안고 스마트폰을 쓰는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한다. 인터넷 화면 캡처
일부 의료종사자의 무분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상정보가 적힌 환자의 진료기록 사진(왼쪽)이나 신생아를 품에 안고 스마트폰을 쓰는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한다. 인터넷 화면 캡처
취업준비생 김모 씨(26)는 남달리 긴 얼굴이 항상 불만이었다. 지난해 면접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이유가 얼굴 탓인 것 같았다. 사각턱 수술이나 양악 수술을 하면 얼굴 길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김 씨는 올해 초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했다. 카카오톡으로 얼굴 사진을 찍어 보내자 병원에선 적절한 수술과 비용을 알려줬다.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김 씨는 깜짝 놀랐다. 해당 병원이 홍보 목적으로 사용하는 페이스북 계정에 자신의 얼굴 사진과 상담 내용이 올라와 있던 것. 김 씨는 “곧바로 항의해 글은 삭제됐지만 혹시 친구들이 봤을까봐 지금도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병원이 늘면서 환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병원 관계자들의 개인 SNS 계정에 진료기록과 주민번호 등이 공개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환자에 대한 욕설이나 질병 내용에 대한 농담을 올려놓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5월 한 병원 관계자는 페이스북에 ‘토요일은 좀비폭탄;;;’이란 글과 함께 진료 대기 중인 환자 30여 명의 명단을 촬영해 올렸다. 사진에는 환자의 이름, 생년월일, 성별, 특기사항 등이 고스란히 나왔다.

경기 부천시의 한 한의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A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발기부전증으로 찾아온 60대 남성의 진료기록을 찍어 올렸다. 여기엔 ‘발기부전, 3일 동안 발기가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A 씨는 ‘늙어서 이러지 마라. 난 너무 안쓰러우면서 웃기다’는 글을 남겼고 친구들도 ‘진짜 웃기다 ㅋㅋ’ 등의 댓글을 남겼다. 또 다른 간호사는 페이스북에 ‘간호사들에게 원한을 사면 빨리 죽는 지름길. 우리는 죽이는 법도 알아요. 시비 걸지 마라’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인 또는 의료종사자가 의료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서울북부지법 오원찬 판사는 “SNS에 환자의 이름 등 신상정보나 병적 기록을 올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환자의 동의 없이 사진을 올릴 경우 명예훼손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병적 기록을 SNS에 올리거나 불특정 다수의 환자를 향해 욕설을 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전문가들은 “의료종사자 전체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직업 윤리성에 크게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1996년부터 의료종사자가 환자의 이름, 주소, 생일 등을 노출했을 때 1건당 100달러, 연간 최대 2만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사협회가 발표한 ‘소셜미디어 사용의 직업윤리성’이란 가이드라인에는 △환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것 △자신의 SNS에 환자 정보가 유출되는지 규칙적으로 확인할 것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할 때 의사로서 직업윤리를 염두에 둘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에는 아직 의료종사자의 SNS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김명주 교수는 “의료종사자의 SNS 활동을 단순히 사용자 개인 윤리에만 맡기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며 “환자가 모르는 사이에 공개된 질병 기록 등은 협박 등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가이드라인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의료 종사자#SNS#진료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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