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그림책에서 ‘아빠’라는 말을 배웠다. 아빠가 곁에 있었을 때, 태어난 지 갓 100일이 지난 아기는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달로 생후 15개월이 된 아기는 곁에 없는 아빠를 부른다. 8일 영예로운 제복상 위민(爲民) 소방관상을 받은 고(故) 윤영수 지방소방장(순직 당시 33세)의 아내 신예진 씨(30)는 그럴 때마다 ‘아기에게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차오르는 눈물을 참는다고 했다.
“회사 언니 소개로 만났어요. 소방관은 아무래도 위험한 직업인 것 같아 결혼할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그런데 이내 사랑에 빠졌죠.”
지난해 2월 부부는 1년 9개월째의 신혼을 만끽하고 있었다. 13일 오전 4시 19분 남편은 화재신고를 받고 플라스틱 공장 화재 현장으로 출동했다. 기둥이 무너지면서 천장에서 떨어진 시멘트 더미가 화재를 진압하고 잔불을 정리하던 남편을 덮쳤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남편은 구급대원이었지만 인력이 부족해 항상 화재진압대원과 함께 불을 껐다고 한다. 집안일을 잘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남자였다.
“위민 소방관상에 고 윤영수 소방장.”
8일 ‘제3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대에서 남편의 이름이 불리자 내내 꿋꿋하던 신 씨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신 씨의 곁에는 남편의 동료들뿐이었다. 이날 신 씨의 친정어머니는 아기를 돌봤고, 시어머니는 일부러 모시고 오지 않았다. “다른 자식들은 살아서 상을 받으시잖아요. 아무래도 어머님 마음이 불편하실 것 같아서….”
고 박근배 지방소방위(지난해 5월 순직 당시 42세)의 위민 소방관상은 부인 안미남 씨(42)가 대신 받았다. 안 씨는 “근무일이 많아 2년 전 1박 2일로 남해에 놀러갔던 것이 마지막 가족여행이었다”고 말했다. 딸 한나 양(14)은 “바빠도 시간을 내서 잘 놀아주던 아빠였다”며 눈물을 닦아냈다. 박 소방위는 지난해 5월 경북 안동시 임하호에서 산불 진화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던 산림청 헬기가 추락하자 실종자 수중 수색에 나섰다가 숨졌다.
위민 경찰관상을 받은 고 정옥성 경감(지난해 3월 순직 당시 46세)은 전남 영광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1991년 순경 공채로 입직해 1995년부터 인천 강화경찰서에서 일하다 강화도 토박이인 아내 한정주 씨(43)를 만났다. 한 씨는 “남편은 고지식한 것이 매력이었다”며 “남들 다 쉬는 명절에 출근하면서도 경찰이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재직 기간에 27차례나 표창을 받은 정 경감은 자살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사람을 구하려다 순직했다.
정 경감의 상은 아들 종민 군(17)이 대신 받았다. 시상대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정 군은 단상에서 내려오자 차분한 목소리로 “아버지처럼 경찰이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위민의 숙명을 떠안은 제복 공무원 가족의 애달픈 마음은 순직자 가족만의 것은 아니었다. 특별상 수상자인 해군작전사 55전대 해난구조대의 에이스 김순식 중사(33)는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한 필리핀 파견을 자원해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부인 서선주 씨(34)는 남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날 대상을 받은 임석우 지방소방장(44)의 장모 박병예 씨(65)는 시상식 내내 음식도 손에 대지 않고 눈물을 글썽였다. 사위가 상을 받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박 씨는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 심정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민소방관상 고(故) 윤영수 지방소방장(경기 포천소방서) 고(故) 박근배 지방소방위(경북 영주소방서) 김영학 지방소방사(경남 김해소방서) ▼ 박근혜 대통령 축사 전문 “국민행복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께 감사”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면서 남다른 책임감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수상을 하신 여러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에는 많은 아름다운 옷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여러분이 입고 계신 제복은 국민들이 주신 신뢰의 상징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군인과 경찰, 해양경찰, 소방공무원 여러분은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애국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완수하면서 국민 행복의 토대를 책임져 주실 때 모든 국민 개개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국민의 더 큰 신뢰로 여러분의 제복이 빛을 발하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도 여러분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여러분 모두에게 건강과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 심사위원
정상명 전 검찰총장(심사위원장) 김진국 강남밝은세상안과 원장(보훈처 심사위원) 이현옥 상훈유통 대표(제복 공무원 보훈사업 기부자)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한기흥 동아일보 논설위원 서영아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