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8시 40분 전남 진도군 군내면의 한 마을. 천모 할아버지(72·지체장애 4급) 부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천 할아버지는 허리디스크를, 부인(69)은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노부부는 면 소재지에 있는 공공목욕탕에서 목욕하기 위해 오랜만에 바깥나들이에 나선 길이었다.
집에서 3km 떨어진 면 소재지까지 천 할아버지 부부의 동행을 도운 것은 장애인 전동스쿠터(휠체어). 부인이 전동스쿠터를 운전하고 천 할아버지는 뒷자리에 탔다. 이들이 탄 전동스쿠터는 시속 10여 km로 천천히 이동했다. 부부는 왕복 2차로 옆의 폭 40cm에 불과한 갓길로 스쿠터를 몰고 갔다. 그러나 곳곳에 풀덤불, 돌덩이가 있어 이를 피해 다니며 어렵게 운행해야 했다.
그렇게 갓길을 5분 정도 가던 중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전동스쿠터 일부가 부서지면서 앞으로 튕겨 나갔다. 양모 씨(45)가 몰던 1t 트럭이 스쿠터를 뒤에서 들이받은 것. 이 사고로 천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부인은 전남 목포시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날 오후 5시 끝내 숨을 거뒀다. 주민 최모 씨(65)는 “40여 년을 다정히 산 노부부가 오랜만에 외출하던 길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전남 진도경찰서는 14일 트럭 운전사 양 씨가 부주의로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양 씨는 “아들을 차로 학교에 태워 주던 중 아침 햇살 때문에 도로 갓길을 지나던 스쿠터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거동이 불편한 시골 노인들은 최근 전동스쿠터, 사륜(바퀴가 네 개 달린) 오토바이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모를 쓰지 않거나 반사표지등을 설치하지 않은 게 상당수여서 사고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사륜 오토바이 사고는 총 301건(잠정치)에 40명이 숨지고 319명이 다쳤다. 특히 전동스쿠터는 차량으로 취급되지 않아 보험 가입 대상이 아닌 데다 사고 현황마저 파악되지 않는다.
남궁헌 도로교통공단 광주전남지부 사고조사과장은 “전동스쿠터, 사륜 오토바이는 엔진 소리가 작아 경운기보다 사고 위험이 높다”며 “가능하면 농어촌 도로 갓길을 넓히는 작업과 함께 반사표지 부착, 안전모 착용 등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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