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피플&피플즈]“장보고 후손이라 자원했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2일 03시 00분


남극 세종기지 근무했던 신길호 경위, 장보고 기지로 또 파견
“완도 출신이라 장보고 후예”… 세종기지때처럼 전기담당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다음 달부터 1년간 대원으로 근무하는 신길호 해양경찰청 경위. 2006년 2월부터 1년간 남극 세종기지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번에 발전 설비 관리를 맡는다. 해양경찰청 제공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다음 달부터 1년간 대원으로 근무하는 신길호 해양경찰청 경위. 2006년 2월부터 1년간 남극 세종기지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번에 발전 설비 관리를 맡는다. 해양경찰청 제공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경비안전과에서 근무하는 신길호 경위(47)는 25일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건조한 대륙인 남극으로 떠난다. 정부가 1988년 남극 킹조지 섬에 처음 준공한 세종과학기지에 이어 로스 해 연안 테라노바 만 인근에 두 번째로 건설한 남극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의 제1기 월동대원으로 1년간 파견되는 것.

이번 월동대에 현역 경찰관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된 그는 남극 근무가 두 번째다. 2006년에도 세종기지 19차 월동대에 포함돼 1년 동안 남극의 겨울을 경험했다.

장보고기지는 최저기온이 영하 34도에 달해 세종기지(영하 25도)에 비해 훨씬 춥다. 또 최대 풍속이 초속 65m에 이르고 악명 높은 블리자드(눈보라)와 화이트아웃(주변이 온통 백색이 돼 방향감각이 없어지는 상태) 현상이 수시로 계속된다.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크레바스(갈라진 빙하의 틈) 등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목포해양전문대를 졸업해 기관사 면허를 갖고 있어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다가 1994년 해경에 특채됐다. 팔순이 넘은 부모와 부인, 초중학생인 세 딸을 두고 있는 가장인 그는 왜 위험하고 외로운 극지 근무를 두 번째 지원했을까.

“제 고향이 전남 완도입니다. 완도에 청해진을 세운 해상왕 장보고의 후예인 셈이지요. 면접위원들에게 ‘조상의 이름을 딴 남극기지가 문을 여는데 당연히 후손이 근무해야 한다’고 하니까 웃음이 터졌습니다.”

장보고기지는 면적이 4458m² 규모로 생활동과 종합연구동, 다목적 캡슐하우스, 정비동 등 16개 건물을 갖췄다. 태양열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겨울에는 15명, 여름에는 최대 60명까지 수용할 수 있어 넓고 쾌적한 편이다. 그는 세종기지 근무 때와 마찬가지로 장보고기지의 발전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발전시설이 차질을 빚을 경우 대원들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지의 운영을 책임지는 셈이다. 비상사태나 사고 등에 대비해 대원들의 건강을 돌볼 정형외과 전문의와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요리사도 월동대에 포함됐다.

남극으로 떠날 그에게 요즘 동료와 지인들은 “펭귄을 잡아 오라” “펭귄의 먹이로 새우와 비슷한 크릴이 맛있다는데 택배로 부치라”는 등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그의 각오는 자못 비장하다.

“월동대의 주요 임무는 대륙 탐사와 수산 및 지하자원, 빙하 연구입니다. 언젠가 개발될 미래의 자원이고 우리도 남극연구에 기여한 만큼 지분이 생길 것입니다.”

신 경위는 세종기지에 생활필수품이 정기적으로 보급되기 때문에 남극으로 떠날 가방에는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속옷만 갖고 갈 계획이다. 또 최근 구입한 디지털카메라로 남극 펭귄의 생태와 하늘에서 펼쳐지는 오로라 등을 촬영할 꿈에 부풀어 있다. 그는 “보통 사람은 평생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할 남극을 두 번째로 가게 돼 말할 수 없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대원들이 파견 기간에 안전하게 지내며 연구 성과를 내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남극은 여름철인 요즘 항공기나 배의 접근이 쉽다. 월동대는 25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뉴질랜드로 출국한 뒤 28일경 뉴질랜드에서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탑승해 다음 달 6일경 남극 장보고기지에 도착할 예정이다. 월동대원이 투입되면 우리나라는 남극에서 2개 이상의 기지를 운영하는 10번째 국가가 된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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