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발생한 전남 여수시 낙포 원유부두 송유관 붕괴사고는 유조선 W호(16만4169t급)가 부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다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전남 여수해양경찰서는 W호가 원유부두에 접안할 당시 평소보다 시속 4km 정도 빠른 13km로 이동하다 충돌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해경은 W호 항해사 등이 사고 지점에서 9∼13km 떨어진 오동도 인근 해상에서 유조선 정박을 총괄 지휘한 도선사 김모 씨(65)와 부도선사 이모 씨(59) 등에게 “배 속도가 평소보다 빠르다고 수차례 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도선사 김 씨는 “(배를) 멈출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매뉴얼대로 했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대형선박 정박 경력 23년에 요즘도 한 달에 10척 이상 정박 안내를 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일반 대형 선박은 도선사가 1명만 탑승하지만 W호는 사고 위험을 감안해 도선사 2명이 탔다. 그럼에도 송유관 충돌 사고가 난 것은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해경은 유조선 선장 김모 씨(38)와 도선사 김 씨 등의 과실 여부를 확인한 뒤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 피해 규모 축소에 늑장 신고 의혹까지
충돌 직후 유출된 원유량은 당초 GS칼텍스 측이 발표한 것보다 200배 이상 많은 16만4100L로 확인돼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특히 사고가 난 지 30분이 지나서야 여수지방해양항만청 관제실에 신고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경은 관제실 통보를 받은 뒤 원유 유출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알았다.
낙포 원유부두에서 3km 떨어진 신덕마을 통장 조현근 씨(67)는 “지난달 31일 오전 9시 35분 원유 냄새가 강하게 풍겨 어선을 타고 나가 보니 기름띠가 유입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주민 김모 씨(38·여)는 “사고 직후 송유관에서 원유가 바다로 쏟아지는 게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경에 원유 유출 신고가 접수된 건 이날 오전 10시 5분이었다. GS칼텍스 측이 사고가 발생한 지 30분이 지난 뒤에야 늑장 신고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신덕마을에 원유 등이 대량 유입된 뒤에야 오일펜스가 설치됐다.
원유 등의 유출량 역시 당초 GS칼텍스가 밝힌 800L(4드럼 규모)가 아닌 16만4100L(820드럼 규모)로 확인되면서 바다 오염 피해 면적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이번 사고로 1만4000여 m²의 해안이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원유 악취로 입원 환자 줄 이어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한 신덕마을 현장 등에는 사고 발생 이후 4일 동안 방제인력 3414명(연인원), 선박 418척이 투입돼 해상방제는 물론이고 해안가 기름을 제거하는 갯닦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덕마을 일부 주민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치료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3일 현재 신덕마을 주민 김순점 씨(66·여) 등 4명이 두드러기, 구토, 어지럼증으로 입원했고 20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김순점 씨는 “지난달 31일 방제작업을 할 때는 마스크조차 지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면장갑으로 원유가 묻은 흡착포를 걷어냈다”며 “그 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얼굴이 계속 화끈거릴 정도로 후유증이 심하다”고 말했다.
○ 피해 마을 주민, 재난구역 선포 요구
신덕마을 주민들은 정부가 경북 구미시 불산 누출사고 때처럼 ‘재난구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여수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지역 시민단체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1995년 여수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고도 700t이라던 유출량이 5035t으로 늘었고 사고 축소 비리로 얼룩진 사실을 기억한다”며 정확한 사고 원인과 원유 유출량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여수시 등은 W호가 1300억 원 상당의 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보험사와 합의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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