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불법 대여는 건설업계의 해묵은 관행이다. 문화재 보수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전문성이 강조되는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의 ‘불법 거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런 거래에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중요무형문화재까지 동참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악습이 이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격 취득부터 문제
현행 문화재수리기술자격증 시험은 남녀노소 누구나 학원에서 공부만 하면 딸 수 있다. 현장 경험이 없어도 되고 건축 관련 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가능하다. 정부는 지난해 숭례문 부실 복원 사태가 터지면서 자격증 대여 문제가 불거지자 부랴부랴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여전히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발표된 32회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 시험 공고를 보면 응시자들은 보수, 단청, 실측설계, 조경, 보존과학, 식물보호기술자 등 6개 종목 중 하나에 응시할 수 있다. 시험과목은 공통과목 2개 과목과 전공과목 3개 과목. 여전히 필기시험으로만 당락이 결정되는 셈이다. 실측설계기술자에 응시할 경우에만 현장 경험을 갖춘 건축사 자격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학원가에서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은 일단 따기만 하면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자격증으로 통한다. 서울 강남의 한 자격증 전문학원에 따르면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응시하는 보수기술자 자격증을 기준으로 객관식으로 출제되는 한국사, 문화재 관련 법령 및 한국건축사 과목은 온라인 강의로 50만 원에 들을 수 있다. 필기시험 중 논술형으로 출제되는 한국건축시공, 한국건축구조 과목은 현장 강의로 10주에 100만 원이 든다. 필기시험 합격 뒤 치러지는 면접 평가도 실습이 아닌 구술 면접 테스트라 전문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결국 1년 동안 약 600만 원을 투자해 합격한 뒤 자격증을 빌려주면 연간 1000만 원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자격증을 딴 사람은 904명에 달한다. 학원 관계자는 “열심히 하면 1년 안에, 늦으면 2년 안에는 합격할 수 있다”며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일단 따기만 하면 일정 수익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 부실 공사 개연성 커
경찰에 따르면 이번에 불구속 입건된 15명 중 5명 정도만 현장 실무 경험이 있었다. 홍창원 단청장의 딸(29) 역시 현장 경험이 없었지만 자격증을 빌려주고 돈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문화재 보수업체들은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해 자격증만 취득한 사람보다 자격증이 없어도 오랜 기간 현장에서 일해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다.
문화재 보수업체들이 불법으로 자격증을 대여받는 이유는 자격증 소지자를 정직원으로 채용할 경우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등록 조건을 갖추기 위해 월급을 주고 자격증 소지자들을 고용하는 것보다 공사가 있을 때만 잠시 자격증을 빌리는 것이 업체로서는 더 경제적이라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10년 이상 문화재 수리 현장에서 일해온 구모 씨(45)는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40, 50대 남성들이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자격증을 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은 1년에 총 100명 정도가 획득하며 합격률은 10% 정도다.
문화재 보수 건설업체 중 영세한 업체일수록 자격증 불법 대여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자격증 불법 대여는 결국 부실 공사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부실 자재를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들에게 매년 수천만 원씩 사례금을 지급하고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부실한 자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결국 부실 공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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