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유조선 충돌 1분전에야 닻 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03시 00분


경찰, 선박항해기록장치 분석… 선원들 당황한 목소리도 담겨
GS칼텍스 밸브 잠그느라 늑장신고

지난달 31일 전남 여수시 낙포동 2부두 원유 유출사고 당시 과속 운항을 했던 유조선 우이산호(싱가포르 선적)가 충돌 직전에 와서야 서둘러 닻을 내리는 등 속도를 늦추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여수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충돌 사고 순간이 담긴 선박항해기록장치(VDR) 분석 결과 우이산호는 충돌 1분 전쯤 뒤늦게 송유관을 발견하고 닻을 내리는 투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적으로 대형 선박의 경우 해상 구조물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접안하기 7, 8분 전에 닻을 내려야 한다. VDR는 선박 운항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음석 기록과 배의 속도 등을 초 단위로 기록하는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비슷한 장치다. 우이산호의 VDR에는 충돌 직전 선원들이 당황하는 음성과 웅성거리는 소리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고 해경은 밝혔다.

해경은 우이산호가 왜 정상 속도를 지키지 않고 7노트의 빠른 속도로 운항했는지, 닻을 내리는 투묘가 왜 늦어졌는지 도선사 김모 씨(65) 등을 상대로 집중 조사하고 있다. 우이산호가 만약 콘크리트 구조물인 선석과 충돌했을 경우 배 안에 실린 원유 27만여 t이 유출돼 더 큰 해양오염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해경은 GS칼텍스 측이 원유가 유출되고 있던 송유관 밸브를 모두 잠그는 데 33분이 걸렸다고 진술한 부분도 보강 조사 중이다. 밸브를 완전히 잠근 시간이 원유 유출량과 피해 규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고 발생 즉시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방제 작업이 지연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수지방해양항만청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서 첫 원유 유출사고 신고를 접수한 시간은 오전 9시 57분으로 사고 발생 22분 만이었다. 신고자는 여수 도선사협회 관계자였다.

우이산호에 탑승한 도선사 김 씨나, GS칼텍스 직원은 파손된 송유관에서 원유가 바다로 쏟아지는 것을 무선으로 내부 보고만 했을 뿐 방제당국에 즉각 신고를 하지 않았다. 우이산호 선원 등은 경찰 조사에서 “송유관을 들이받은 선체를 빼내기 위해 신고가 늦어졌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 직원 역시 송유관 밸브를 잠그는 작업을 하느라 사고가 발생한 지 30여 분이 지난 뒤에야 신고했다. GS칼텍스 측은 “밸브를 잠가 피해를 최소화하려다 신고를 챙기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사고 발생 즉시 방제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해양오염 위기대응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한편 원유와 기름막이 퍼진 여수와 경남 남해지역 어민 등 3000여 명은 혹한의 추위 속에 기름 한 방울이라도 더 닦아내기 위해 이날도 사투를 벌였다. 6일 첫 피해보상 대책회의가 열리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여수#유조선 사고#GS칼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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