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해? 대단하네”… 배우자 어깨가 올라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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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1부>나는 동네북이 아닙니다
10년차 이상 고참 부부, 한마디가 중요하다

《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부부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혼 10년 차를 넘어선 부부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평가하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편하게만 느껴지는 상대방이지만,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질타가 될 수도, 격려가 될 수도 있다. 중장년층 ‘고참 부부’가 주고받는 말은 오히려 더 신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  

■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럴 땐 약 안기순 씨(43·결혼 22년 차)는 맞벌이 부부. 시댁에서는 안 씨를 가정과 일, 두 마리 토끼를 잡은 1등 며느리라고 칭찬한다. 안 씨는 남편이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하는 말에 큰 힘을 얻었다. 결혼 후 출산과 양육 문제로 퇴직을 고민할 때, 남편은 “나에게도 일을 맡기라”면서 육아와 가사를 적극 도왔다. 퇴근이 늦어져 저녁을 차려주기 힘들 때에도 남편은 미안해하는 안 씨에게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라고 말했다.

이럴 땐 독 이정수 씨(45·결혼 20년 차)는 전업주부다. 남편은 뭐든 혼자서 척척 결정하는 성격이다. 이 씨가 상실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두면서다. 늦게 귀가한 남편은 이 씨가 하루 일이 어땠는지를 물어봐도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말은 무성의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남편은 몰라요. 뭐든 알아서 하는 게 가족들에게 얼마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단 한마디예요.”  

전문가가 봤을 땐… “신뢰 바탕으로 하면 든든, ‘간섭하지 마’로 보일 수도”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은 행동이 함께할 때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이 말은 때로는 ‘날 믿어주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돕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어서 부부 간 애정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부부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행동이 말을 따라가지 못할 때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일을 맡겨도 제대로 처리된 게 없으면 불만이 생긴다. ‘내가 알아서’라는 의미가 상황에 따라 ‘내 마음대로’라고 해석될 경우에도 갈등이 발생한다. 이는 곧 “간섭 좀 그만하라”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이럴 땐 약 이상아 씨(53·결혼 30년 차)는 오랜 결혼생활에도 어딜 가나 ‘잉꼬부부’ 소리를 듣는다. 이 씨는 ‘매일 새롭게 발견하는 상대의 모습’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첫 신혼집을 꾸밀 때 남편은 “군대에 있을 때 전문가처럼 배워왔다”며 도배 일을 자처했다. 말과 달리 서툴기 그지없었지만, 이 씨는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대단하네”라며 남편을 칭찬했다. 늘 칭찬을 해 주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더욱 적극적인 성향으로 변해갔다.

이럴 땐 독 박보미 씨(56·결혼 31년 차)는 얼마 전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큰 상처를 받았다. 친정 어머니가 아파 집으로 모셔와 간호를 하던 중, 남편은 박 씨에게 “이런 것도 할 줄 아느냐”고 무심코 말을 던졌다. 박 씨는 이전까지 건강이 좋지 않은 시부모님의 간호를 도맡아 왔었다. 박 씨는 그동안 자신의 노고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고 느꼈다. 남편은 집들이를 할 때, 자녀 교육을 시킬 때에도 농담 삼아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라는 말을 반복했다. 박 씨는 ‘남편이 내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전문가가 봤을 땐… “인정받고 싶은 욕구 충족, 자주 하면 오히려 역효과”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라는 말은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적 욕구를 채워준다. 하지만 때로 “당신 이런 건 못하는 줄 알았다”는 말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자칫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인정해 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는 상대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좋은 행동을 지속하려는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만 칭찬은 되도록이면 오해의 소지가 없는 표현으로 대체해 사용하는 게 좋다.  

■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

이럴 땐 약 강석경 씨(44·결혼 14년 차)는 식사를 마친 뒤 밥상을 정리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음식물 쓰레기의 물기를 쥐어짜려던 참이었다. 정리를 돕고 싶었던 강 씨는 아내의 비위가 약하다는 게 생각났다. 강 씨는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라”면서 “요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도 있던데, 그거 하나 살까”라고 말했다. 아내는 남편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궂은 집안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이럴 땐 독 권석현 씨(45·결혼 15년 차)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집에서 듣는 아내의 잔소리는 참기 힘들다. 청소를 하던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아내가 자리를 피하려는 권 씨를 잡아 걸레질을 시켰다. 아내는 권 씨의 손길이 시원찮아 보였는지 냉랭한 말투로 소리를 질렀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아내의 핀잔에 기분이 상한 권 씨는 걸레를 집어던졌다. ‘해줘도 욕먹는 바에야 안 하고 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 씨도 “당신도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라고 되받아쳤다.  

전문가가 봤을 땐… “대안 없이 하지말란 말, 불난 집에 기름 붓는격”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라”는 말은 듣는 상대의 기분에 따라 극과 극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때로는 배려의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한낱 지적에 그칠 뿐이다. 억지로 해야 할 일을 하는 상대에게 “싫으면 관두라”는 말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결국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결해줄 의지가 없으면서도 무턱대고 이런 말을 던지면 화를 돋울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굳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좋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배우자#고참부부#부부 관계#대화#신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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