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미용성형 부가세 늘자 되레 현금결제 권유 구실로 악용
공공연한 ‘탈세 마케팅’ 벌이는 셈
이달 초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코 필러(화학성분인 필러를 주입해 코 모양을 교정하는 시술) 등의 시술을 받은 김모 씨(27·여)는 총비용 147만 원을 전부 현금으로 결제했다. 현금으로 한꺼번에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병원 측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10%의 부가가치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 김 씨는 결제 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달라고 했지만 병원 측은 부가세를 빼는 조건으로 할인한 금액이기 때문에 안 된다며 거절했다.
이달 1일부터 안면윤곽 성형, 보톡스나 필러 시술, 주근깨 제거 등 대부분의 미용성형 및 피부시술에 의료부가가치세 적용이 확대됐다. 올해 1월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포함된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씨의 사례에서 보듯 부가세를 빌미로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등 개정안 시행이 무력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개정안은 쌍꺼풀, 코 성형, 유방 축소·확대술, 지방흡입술, 주름살 제거 등 5개 항목에만 적용되던 부가세를 치료 목적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용성형에 부과하도록 했다. 이에 성형외과와 피부과들은 지난달 개정안 시행 전에 미용시술을 받으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 이달 들어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자 현금결제를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돌아선 것.
취재팀이 1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역삼동 일대 성형외과 및 피부과 7곳을 살펴본 결과 4곳에서 카드결제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현금결제를 유도했다. 역삼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사각턱 축소 수술에 대해 문의하자 병원 측은 수술비 380만 원을 제시한 뒤 현금으로 하면 부가세를 빼고 350만 원에 해주겠다고 제의했다. 병원 관계자는 “소득신고를 할 때 수술비를 320만 원 정도로 하면 부가세를 합쳐 350만 원쯤 되니까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압구정동의 또 다른 성형외과에서는 주근깨 제거 시술을 문의하자 회당 10만 원인 레이저토닝 시술을 권했다. 현금과 카드결제 비용이 같냐고 묻자 “원래 부가세가 10% 붙는데 현금으로 하면 세금만큼은 빼주겠다”고 말했다. 이 병원 프런트에는 2월 1일부터 미용성형에 대한 부가세가 확대 적용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버젓이 붙어 있었다.
면세 혜택을 줄여 복지정책을 위한 세수를 확보하는 취지로 시행된 개정안이 성형업계에서 오히려 세금 탈루라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역삼동의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원래 현금으로 하면 가격을 빼주는 것은 성형업계의 오랜 관행인데 최근 부가세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부가세가 이를 부추기는 새로운 도구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2, 3년 치 과세자료와 비교해 소득이 현저히 줄어든 병원에 대해 세무조사를 철저하게 실시하는 등 면세 혜택 축소라는 개정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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