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firm&Biz]법률시장 ‘한강의 기적’ 위해 지원 절실… 해외 경쟁력 키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8일 03시 00분


위철환 47대 변협회장 인터뷰

21일 만난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 회장(56)은 “과거 정부가 철강, 정유산업을 육성했던 것처럼 법률 서비스 산업도 적극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약속이 없는 날엔 혼자 국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회장님’으로 체통 좀 지키시라며 핀잔하는 집행부 이사들의 얼굴엔 부끄러움보다 자랑스러움이 엿보였다. 1년 전 ‘보통’ 변호사를 표방하며 대한변호사협회 47대 수장이 된 위철환 회장(56). 1만5000여 변호사를 이끄는 그의 리더십은 강하고 화려하기보다는 수수하고 부드러운 편이다. 법률시장이 개방되고 수천 명의 새내기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는 ‘난세’에 대한변협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최근 ‘법률분야 한강의 기적을 위해’라는 글을 기고했는데….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해 그동안 제조업 중심의 수출 산업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하지만 법률 서비스 산업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행 통계 자료를 보면 2013년도 법률서비스 분야의 무역수지는 약 7억420만달러(약 7594억 원)가 적자로 우리 법률시장의 연간 매출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2017년 3차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적자 폭은 더 커질 것이다.”

―법률서비스 수지 적자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외 경쟁력이 열악하다.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투자나 기업 활동을 할 때 법적인 조력이 필요한데 현지 외국 로펌에 맡기는 실정이다. 반대로 외국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를 할 때도 다 못 찾아 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가서 손해 안 보고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법률 조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를 든다면….

“법률 서비스 국제 경쟁력과 관련해선 영국이 참 부럽다. 영국은 해외 주재 대사가 세일즈맨의 역할도 한다. 외교관의 지위도 있지만 국가 기업을 위한 ‘세일즈’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국이 전통적으로 강한 중재법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한국 변호사들을 초청해 자국의 로펌과 연결해준다. 자기 나라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켜 줌과 동시에 그 지원을 자국의 법률가들이 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변협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홍콩과 영국, 미국 변호사회와 청년변호사 교환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회의에서도 한국 변호사들이 패널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엔 청년 변호사 10명 정도가 영국의 대형 로펌을 방문하고 배리스터(영국변호사) 교육도 받는 등 3주간 교환 프로그램을 다녀왔다. 올해는 영국 변호사 10명 정도가 우리나라로 올 것이다. 법률사관생도를 기르듯이 우리 변호사들을 글로벌 전문가로 양성하자는 취지다.”

―변호사들이 눈여겨봐야 할 시장이 있다면….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가 10대 무역대국이라 교류가 활발한데도 국내 변호사 조력이 거의 없다. 외국 변호사들이나 현지 법조 브로커에게 맡기는 실정이다. (수요는) 절실한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제대로 된 서비스 지원을 못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지역의 중심이자 회교 국가로 중동과 연결도 잘돼 있다. 무역량도 많고 기업 간의 중재시스템도 잘 구축돼 있다. 또 영연방이기 때문에 영어도 잘한다. 국내 변호사들에겐 개척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TV나 냉장고를 수출하듯이 해외에도 법률서비스 수출을 하자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나라도 변협이 중심이 돼 작년 5월 서린동에 서울국제중재센터(SIDRC)를 개소했다. 재판은 3심이지만 중재는 단심으로 끝나기 때문에 비용도 적게 들고 신속해 기업 간 분쟁에 많이 쓰인다. 국적이 다른 기업들 간에 어느 나라에서 중재를 할지도 굉장히 중요한데 대한민국의 중재 법정을 빌려준 것이다. 그런 기능을 하는 센터가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홍콩 등에 있고 일본에는 아직 없다. 경제력이 날로 커가는 중국은 해외 기업과 다툴 경우 자국에서 중재하면 의심을 사니까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중재센터를 찾는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 기업의 분쟁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보다는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가까우니까 유리하다. 앞으로 잘 활용하면 국부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로스쿨 평가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로스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로스쿨 제도의 부작용에 대해 말이 많다. 로스쿨 입학 과정에서 면접 비중이 큰데 법학적성시험(LEET) 성적이 비슷하면 명문대 출신이나 유력 집안 자제들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학비도 비싸 서민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형편이다. 이런 현상은 졸업 후 로펌 취업 과정에서도 되풀이된다. 명문대 출신이 아니거나 집안 배경이 없으면 좋은 로펌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오죽하면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도(고려·조선시대 귀족 또는 양반 자제를 시험 없이 관료로 채용했던 제도)라고 부르겠나.”

―그래서 사법시험을 존치시키자는 얘기인가.

“사법시험은 적어도 선발에서는 공정하다. 나이가 많든지 시골 출신이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사법시험 존치 기한이 2017년까지 되어 있는데 당장 폐지시키지 말고 적어도 200∼300명 선발을 유지하면서 조금 더 지켜보자는 것이다. 전국에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한 법과대학이 74개이고 사법시험 준비생들은 8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살겠나. 돈 없고 배경 없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서민들 입장에서 봤을 때 무엇이 공정한 국가시스템인지도 중요하다.”

―취임이후 청년 변호사들 취업난이 고민이라고 밝혔다. 취업 대책과 관련해 복안이 있나.

“법정 밖 일자리가 많이 늘고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 과거 변호사들은 송무 중심으로 일했지만 요즘 변호사들은 정부기관 회사 등에 다양하게 취업한다. 업무 분야도 송무 외에 거래계약서 검토, 기업 준법지원 등 법률 예방적인 활동으로 확대됐다. 법률시장의 개방에 따라 새로운 분야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금융 국제화를 위해 민관 공동의 협의기구를 만들 것을 청와대에 제안했다. 금융 발전을 위해 법률 컨설팅을 하는 젊은 변호사들을 양성해서 국제 전문가를 키워보자는 취지다. 전문변호사를 육성하는 것은 고용 창출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조립할 때 누가 사줬나.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

―변협에서 10년간 통일법 조찬포럼을 진행해왔고 올 1월엔 통일과 법률 아카데미를 출범시켰다.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때문인지 요즘 여기저기서 통일 이야기다. 변협은 이미 10년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온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무너진 것처럼. 남북이 서로 법체계가 다른데 가령 서독의 법을 동독에 적용했던 것처럼 된다면 새로운 법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법질서 안에서 사람들의 생활규범도 달라질텐데 어떻게 교육을 하고 경과규정을 마련할지 준비해야 한다. 그동안 통일 정책 세미나를 37번 열었고 조찬포럼은 2004년부터 올해 1월 28일까지 54번 개최했다. 아카데미를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북한법도 연구하는 등 준비하고 있다. 100명의 전문가만 양성을 해도 통일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개성공단을 준비할 때도, 문을 갑자기 닫았을 때도 손해배상소송 등 법률적인 도움을 줬다. 새터민도 다문화 위원회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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